5시간 45분 짜리 방한(訪韓)회담.
한미 외교사(史)에서 지금까지 최단기간 정상회담 체재기간으로 기록돼있는 회담은 89년 2월 부시 전미국 대통령의 방한회담이다.
국제외교 관계에서 적어도 독립국가간의 대등한 국가원수 회담에 소요된 시간이 한나절도 채안되는 콩볶아 먹기식 외교형태에 대해 당시 한국언론은 물론 미국과 중국등 해외언론들은 일제히 헬리콥트고속나들이 를 비난했었다. 워싱턴 포스터는 인색한 체류일정과 한국민들과의 접촉결핍등으로 한미간의 우호나 국익증진보다는 긴장이더 악화됐다 고 지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방문일정중 중국에서는 북경의 군중과 섞이고 바베큐를 주재하는등 성의있는 방문을 했다고도 보도했다. 영국의 언론들도 부시가 6.25이후 적대적이라고 할만큼 비우호적인 대접을 받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일것 이라는 따가운 비판을 가했다.
한마디로 일본 국왕의 장례식에 들렀다가 중국으로 건너가는 틈새에 자투리 시간을 내 노정권의 체면을 챙겨준 정도의 외교행차였다는 비판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이번엔 문민정부가 6시간짜리 방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어 일부 언론으로부터 냉소적인 비판을 사고있다. 워싱턴 현지에서 들어오는 한국언론인의 보고와 시각으로는 우리 정부가 소위 4월총선 을 의식한 나머지 대미 외교 현안문제가 원칙없이 다뤄지고 끌려다니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국 외교팀은 클린턴이 일본과 러시아를 방문하는 틈새에 자투리 시간을 내서 한국을 방문해주고 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라는 지시에 비상이 걸려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거 우리의 역대정권들은 군사정부라는 정통성 문제의 약점을 덮기위해 미국대통령과의 회담을 국면전환의 카드로 써먹으면서 그때마다 외교실익을 포기하거나 대폭 양보하는 관행이 없지않았다.
민주문민정부로서의 정통성이 없었거나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색 문민정부. 대미외교에서도 더이상 국내의 정치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연출하는식의 낡은 술수로부터 벗어나야 할때다.
이번 클린턴의 방한계획은 미국 쪽에서 보면 애초부터 일본~러시아순방 스케쥴에서 빼놓았던 일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이 정말 한국에는 볼일이 없어서 빼놓은 것일까. 과거의 외교관행을 놓고 짐작컨데 미국은 클린턴의 방한을 원초적으로 없었던 일로 접어두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들은 경험적으로 일본 러시아 코스를 만들어두면 한국이 제발로 자투리시간 이라도 내달라고 사정 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더구나 한국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노회한 미국의 짐작대로 한국정부는 워싱턴 외교팀에게 북.미연락사무소 개설문제를 총선이후로 미뤄달라는 외교주문과 함께 방한을 부탁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쯤되면 미국으로서는 차포한개씩을 떼놓고 두는 장기나 다름없게 된다. 느긋하게 6시간이냐 5시간이냐만 갖고 상대해도 상대쪽은 감지덕지할 판인 것이다. 단 한시간이라도 국가원수가 우방국을 방문하고 정상회담자리에서 커피한잔만 하고 헤어지더라도 안한 것보담은 낫다고 말할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6시간이란 사상두번째의 최단기간 방한시간 그리고 이쪽에서 만나자고 부탁부탁해서 만나는 만남이 과연 얼마만큼 우리쪽에 유리한 외교성과를 얻을까 하는데는 기대가 가지 않는다.
지금 대북문제와 연관된 한미현안이 복잡하고 시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외교의 형태는 좀더 진지하고 신중하며 여유로워 보여야 한다. 황망하게 길가는 과객 소매자락 붙잡고 주막 평상끝에 걸터앉아 덕담 몇마디 주고받는 식의 안달하는 이미지를 주면 7년전 언론과 국민들이 보여준 냉소적인 불신과 거부감 밖에는 얻을게 없다.
이제는 좀더 성숙된 외교, 묵직하게 버티면서 크레믈린 굴뚝같은 뱃장으로 실익을 계산할 줄 아는 외교가 될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외교관 들에게 재량권을 넓혀주고 판단을 맡겨야 좋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이익이나 계산을 외교에까지 밀여붙여온 과거의 관행이 얼마나 우리의 국익을 알게 모르게 해쳤던가를 생각하면 이번 문민정부의 성급한 대미외교 자세야말로 개혁 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화된 개혁의 시대를 원한다면 교육문제는 교육장과 교육부장관이 결정하게 맡기고 외교는 외교관들에게 맡기는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
인문계 여고 진학자 문제하나만 해도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닌데도 교육현실을 모르고 앞뒤 생각않은 말한마디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전문성을 존중하지 못한데서 기인된 일이다. 세상일엔 어느 구석이나 다 전문가가 있는 법이다. 큰 지도자는 시시콜콜 끼어드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두루지원하고 도와주는 전지전조(全持全助)의 존재가 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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