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세풍'-'역사 바로세우기' 누구 몫인가

입력 1995-12-14 08:00:00

**홍종흠(본사 논설위원)**김영삼대통령이 주도하는 5·18특별법 정국은 '역사 바로 세우기'란 총론적 방향에선 국민의 다수가 동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김대통령의 의도에 대해선 그의 12·12특별담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순수하게만 받아들이는 국민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전두환·노태우씨를 구속하고 12·12, 5·17, 5·18에 대한 수사재개와 5·6공비리를조사하면서 5·18특별법 제정에 나선 현재까지의 진행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의 마무리 결과에 따라 총체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5·18특별법정국의 남은 과제가 김대통령의 사심없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될지,아니면 정권의 이해와 관련한 정략으로 평가될지를 판가름해줄 것이다.*쿠데타 단죄의 평가

그러나 '역사 바로 세우기'는 김대통령의 몫만은 아니다. 12·12와 5·18의 단죄가 시작된 것은 김대통령의 전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국민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특별법의 제정을 매듭지을 김대통령을 포함한 3김씨가 이끄는 기성정치권은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한쪽 주체이긴 하나 동시에 한쪽 대상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한기성정치권의 몫만도 아니다. 김대통령은 신군부정치세력과 정치적 결합을통해 집권했고 3김씨 모두가 노태우씨와 5공 청산에 역사적 합의를 했다는사실만으로도 이른바 쿠데타세력의 정치적 파트너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론과 국민만이 가장 순수한 입장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언론은 12·12와 5·18사건에 대해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5·6공내내도록 잘못된 보도에 대한 반성과 사죄없이 지내왔다. 또 국민은 6월 항쟁후 민주화과정의 첫 직선 대통령으로 노태우씨를 뽑은 것을 '역사 바로세우기'와 관련해 어떤 평가를 받을수 있을것인가.

*세조와 사륙신 복권

그렇다면 '역사 바로 세우기'는 누구의 몫인지 다시 자문해보지 않을수 없다. 여기에 우리는 조선조 세조의 왕위찬탈과 관련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참고해 볼수 있을 것이다.조선조 7대임금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유혈쿠데타로 빼앗고 집권하자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된 충신 6명이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륙신의 일은 너무 유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이들이 조선조의 대표적 충신임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있지만 그들은 역적의 죄명으로 사형된뒤 2백35년이나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난 다음 숙종17년에야 복권, 복관됐다. 쿠데타당시에 죽은 단종의 신하와 가족등이 완전 복권된 것은 그로부터또 1백년의 세월이 흐른뒤인 정조 15년이었다.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은 인물들이 충신으로 바르게 평가된 '역사 바로 세우기'의 2백~3백년의 긴 세월동안 충신들에 대한 신원운동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세조의 후손들과 추종세력에 의해 번번이 저지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충·효를 국가와 사회의 최고 가치로 숭상했고 왕위세습의 법통과정통을 체제수호의 제1원리로 삼았던 조선조로선 사륙신을 충신으로 복권시키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역적으로 평가하는한 신하가 임금을 치는 왕권찬탈행위가 계속 정당화될수 있을 것이고 체제수호가 어렵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사륙신이 충신으로 평가됐다는 것은 세조의 왕위찬탈대역죄가 그의 후손에 의해 간접 인정된 것으로 볼수 있는 것이다. 함석헌선생은 세조의 왕위찬탈과 사륙신 복권이 지연된 역사를 조선조의 '회칠한역사'로 보고 이같은 가치전도가 조선조 멸망의 씨앗이 됐다고 지적한바 있다.

*'5·18정국' 남은 과제

12·12와 5·18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한마디로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정부를 세우고 지켜야 한다는 헌법정신과 체제정통성 수호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국헌과 체제를 유린한 세력에 대한 단죄와 청산은 국가정통성회복과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같은 청산은 현실적으로 쿠데타세력과정치적 파트너였거나 그들과 결합한 세력에의해 처리될수 밖에 없는 한계에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씨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들 세력과 결합했던 김영삼씨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으로서도 그같은 한계를 불가피하게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쿠데타세력의 사법처리만으론 불충분한 것이다. 국민모두가 민주가치수호의 신념을 다시 다지고 반성하는 바탕위에서 15대 총선과 대선에서 청신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정치적 주역을 바로 뽑는길 뿐이다. 〈본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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