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인권향상 한평생 최창화목사별세

입력 1995-02-09 08:00:00

해방이후 일본사회속에 피었던 외로운 한국혼이 또 숨을 거뒀다. 재일동포차별의 상징인 지문날인 반대운동과 한국명 사용등을 끈질기게 펼쳐온 재일대한기독교 규슈(구주) 고쿠라(소창)교회목사 최창화씨가 8일오전 11시35분기타큐슈시(북구주시)의 오구라 기념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졌다. 향년 65세.평북 선천군에서 태어난 최목사는 44년 도일, 고베(신호)의 개혁파 신학교를졸업한 뒤 고쿠라교회 담임목사로 평생을 보냈다.그는 75년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뉴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는데 항의, '인격권 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해 NHK가 한국명은 한국식으로발음케하는 계기를 만드는등 재일한국인 차별해소와 지위향상 운동을 개시한이후 최근의 참정권운동까지, 동포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살아왔다.80년부터 외국인등록법에 따른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벌인 사실은, 한일간은물론 세계적으로도 민족차별의 상징으로 부각시키고 마침내 날인폐지에 이르게 한 인권운동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법무당국의 강제지문날인을 거부,기소돼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89년 히로히토(유인)왕이 죽으면서최고 재판소에서 대사면에 따른 면소판결을 받았다.

최목사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차별철폐운동에 함께나서, 장녀인 선애(35)및 선혜씨(29)도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전개해 왔으며, 특히 선애씨는 씨는 미국유학에서 돌아올 때 지문날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일본정부가 재입국을 거부, '협정영주자격'을 상실하자 이에 대항해 법정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루한 재판끝에 후쿠오카(복강)고법은 작년 5월 선애씨에게 내린 재입국불허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 최목사 가족은 물론 재일동포들에게 작은 승리의기쁨을 안겨주었었다.

최목사는 87년 당뇨병으로 입원한 이후 심장병과 폐암등 합병증으로 고생해오면서도 최근까지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규명운동을 벌이는등 민족·인권운동을 멈추지 않았고, 지난해부터는 재일동포의 참정권획득을 위한 운동을 제창하기도 했다.

〈도쿄 김종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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