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선인장이야기(25)

입력 1994-04-30 08:00:00

혜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느릅나무 밑의 욕망'도 이젠 충격과 긴장을 줄 수 없는 것 같아. 사람들이아직 그다지 충격적인 내용을 많이 접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에선 유진오닐이극을 쓸 때만 해도 좋은 시절이었지.난 이 연극이 실패한 것 같아. 시대를넘어서는, 또 어떤 도덕적인 기준 같은 걸 넘어서는 전형적인 인간이 있다고나는 소박하게 생각했고 그런 인격을 연극을 통해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믿었어. 근데, 연극을 보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언니처럼 생각하지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성공적이라는 말,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것일까?난 무대에서 보았어. 연극을보고 있는 사람들의 반 이상은 '욕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연극의 제목에 이끌려 연극을 보러 왔던 게 아닐까 몰라. 난 무대에서 관객들의 그 기막히게 무지한 눈빛을 만났고, 당황스러워 혼났어""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연극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진지하던데.좋은 원작에, 좋은 연기. 나무랄 것이 없던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였다. 혜수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그렇게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니. 난 혜수의 연기가 너무나 성실했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일에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언니. 난 연극을 잘 했느냐, 못했느냐 하는 걸 이야기하자는 게 아냐, 요즘은 전문가가 많은 세상이라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연기를 아주 잘하는 배우들도 많아. 내 생각은 오히려 연기는 좀 못해도 상관 없다는 거야.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뭘, 어떻게'하느냐는 것이지. 말하자면 나는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에 담아서 나를 표현하고 전달할 것인가 하는 기본적인 고민을 하고있는 셈이야. 타인들이 내식으로 생각하고 느낄리 없다는 게 이렇게 기막힌것인 줄 몰랐어. 연극을 무대에서 한다는 건 나 혼자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를하는 것과는 다르잖아" 그리곤 나의 동의를 구하고 싶다는 듯 덧붙여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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