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고도를 기다리며

입력 1993-10-22 08:00:00

가을이 깊어간다. 이제 이 해도 두어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이 우리는 올해도 많은 것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사랑을, 자유를, 혹은 유토피아와 같은 새로운 세상을.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것을 만나 웃으며 돌아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기다리던 것을 만나지못하고 깊어가는 가을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란 때로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기다림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쓸쓸히 낙엽을 밟고 집으로 돌아가 밤새워 램프를 닦는다. 헌 램프를 닦아 반짝반짝 빛을 발하면 기적처럼 램프속에서 거인이 나타나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말해주기를 기다린다.우리는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퇴근후의 포장마차에서우리는 항상 기다림의 끈에 단단히 매여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바로 현대 인간의 이같은 기다림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고 있는 우울한 연극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은 무대위에서 지루하게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지못하지만 그들은 단지 {기다려야 한다}는 숙명적 명제에 매달려있다.기다림속에 박제된 이 두사람의 무의미하고 어처구니없는 모습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고도는 무엇인가. 우리들이 기다리는 사랑과 돈과명예인가, 신의 메시아인가, 아니면 베케트의 지적대로 {아무것도 아닌 무(무)}일 뿐인가. 이 물음엔 해답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도 역시 그 무엇인지 알수없는 고도를 기다리기 때문에 내일을 포기하지않고 살아야 한다는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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