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보다는 책님이다

입력 1993-09-04 08:00:00

지금까지의 우리경제가 달의 경제였다면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는 앞으로의경제는 해의 경제가 된다. 달의 경제는 웬만한 것은 감춰지고 덮어진다. 그래서 정의보다는 경제성장이 가능한등 장점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지하경제가GNP의 30%정도를 차지하고 커미션 정경유착으로 대표되는 부패구조를 이루고있다.이에비해 해의 경제는 실명이라는 햇빛으로 인해 모든것이 드러나 부패와 지하경제가 숨을 곳이 없는 청부경제가 된다. 따라서 경제성장보다는 정치 경제사회 각분야에서 정의구현이 우선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도 몸에 이롭지않으면 독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달의환경에 익숙해진 우리경제를 어떻게 해의 환경에 무리없이 적응시키느냐에그성패가 달려있다고 보겠다.

그런데 현정부는 달빛에 젖어온 우리경제에 일률적으로 그리고 예외없이 실명이라는 햇빛을 내려쬐려하고 있다.

햇빛에 적응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도 주지않은채... 그렇게되면 달빛에 익숙해진 기업은 달빛과 조건이 비슷한 밀림으로 숨을 수밖에 없다. 바로 실명제이후 시장등에 중소기업간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는 사금융권의 형성이 그것이다.

무자료거래를 해온 이들은 실명제이후 은행에 돈은 넣지도 찾지도 않은채 현금으로만 장사를 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자기앞수표는 물론 온라인거래도삼가고 있다. 다만 자기들끼리 은행보증없이 위험하나마 소위 문방구어음으로 신용거래를 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탈세를 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렵더라도 이렇게 장사하는 것이 국세청에 자료를 드러내는것보다는 낫다는 계산이다.

이렇게 장사하다보니 자연 거래도 줄어 시장마다 매출이 20-50%씩 줄고 있으며 이는 결국 우리경제의 후퇴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양성화될 것이라는 사채시장은 규모를 줄이면서 더욱깊이 잠적, 년40%에 달하는 고이를 받고있어 이에 의존하는 영세중소기업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이렇게 은행등 제도권금융기피현상이 일자 은행의 8월중 저축성예금증가가지난7월의 1/5로 줄었다. 이 미미한 증가도 모두 기관들의 것이다. 모두 현금만 좋아하고 찾아가기만 하니 은행예금이 늘어날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밑도끝도 없이 나도는 10월 금융위기설도 더욱 은행을 외면하게 하고있다.이러한 비관적 요소중에 무시할수 없는 것에 실명저항도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실명제가 경기를 그르치고 있다고 느끼는데 대한 불만이다.먼 훗날의 경제정의보다는 당장 눈앞의 불경기가 걱정인 것이다.또 상당수 국민은 정부의 계속되는 해명에도 불구 세금불안과 실명확인에 따른 불편에 저항감을 느끼고 있다. 가족이름차명예금에서 보듯 "예금은 애국이다"는 신념으로 했는데 "큰손만 손인가"하는 식의 일률적인 적용에 따라 "재수없으면 걸릴지도 모른다"는 찝찔한 불안이 있는 것이다. 또 학교가 권해서는한 국교생저금이나 송금등 2-3만원 규모의 작은금융거래마저 일일이 실명확인이 붙자 "큰손은 빠지고 우리만 고생한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희망적이었던 실명제가 이제 중산층에서는 서서히 {실망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박재윤 경제수석은 이번 실명제를 놓고 "경제적인 측면뿐만아니라 정치 사회도덕적인 측면까지 모두 고려해 준비하다보니 상당히 강력한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경제적으로만 보면 충격을 크게 할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경제하나 살리는데도 어려운 판에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겠다"는 과욕이다. 오죽했으면 실명제를 선도했던 경실련마저 부분적 후퇴를 권고 했을까.

실명제가 잘 되고 있는 미국은 경제도 잘 안풀리고 지하경제도 설치며 소득분배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반면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지 않은 일본은 경제도 번성하고 지하경제규모도 상대적으로 적으며 소득분배도 잘 이뤄지고 있다.이것만봐도 실명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알수 있다. 경제하나만이라도 확실히 잡아야 할 것이다.

명분에 너무 치우치면 결과를 그르치기 쉽다. 실명제로 경제정의를 구현하려했다는 동기의 순수성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없다. 그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오늘의 정의구현보다는 내일의 력사에대한 책님이 더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점에서 무기명장기채도 허용하여 검은돈도 역사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해와 달과신사의 외투} 동화에서보듯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검은돈은 더욱 땅속으로숨게 마련이다. 등소평의 말처럼 고양이는 희든 검든 쥐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 말에 대한 실험도 끝난 상태가 아닌가. 언제까지 우리는 과거를 들추며 정의타령만 하고 있어야하나. 이번 실명제가 우리경제를 빛내는 {실명제}가 될것인지 우리경제를 죽이는 {실명제}가 될것인지 그것은 우리가 하기에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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