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대구 독립영화계의 '실과 바늘'… 김은영 감독·황영 프로듀서

입력 2026-10-14 14: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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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와 책에 담아… "10년 뒤에도 이 자리에 있을 것"

황영(왼쪽) 프로듀서가 영화
황영(왼쪽) 프로듀서가 영화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 포스터를 들고 김은영 감독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최근 열린 제6회 Jeolla(전라) 누벨바그영화제에서 김은영 감독의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가 일반경쟁 장편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전북도가 젊은 영화인의 창작 기반을 넓혀 주기 위해 매년 여는 행사다.

대상을 수상한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는 좀비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권태와 우울을 사랑의 힘과 맛있는 음식으로 극복해 나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는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토론토 릴 아시안 국제영화제, 스페인 지로나 영화제 등 국내외 주요 영화제에 초청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김은영(39) 감독은 대구를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영화감독이다. 어느덧 '감독'이라는 말을 들은 지 15년, 연출한 영화는 9편이다. '중견'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경력을 쌓았다.

그의 영화 엔딩 크레딧에는 '실과 바늘'처럼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황영(44) 프로듀서다. 이번에도 이 영화의 초고를 쓰고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황 프로듀서는 김 감독의 남편이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오랜 연애 끝에 2018년 결혼했다.

김은영 감독이 영화
김은영 감독이 영화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 출연진·스태프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라니북스 제공

◆대구영상미디어센터 통해 영화계 입문

이들은 계명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김 감독이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워크숍의 문을 두드리면서다.

"그림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대학 시절엔 글도 많이 썼고, 책 만드는 수업을 듣고 단행본도 만들어 봤습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죠. 2009년 졸업 후 고향인 울산에서 입시미술학원 강사 생활을 1년 가까이 했는데 뭔가 답답한 느낌이었어요. 뭔가 더 하고 싶은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대구로 왔고, 그런 고민 끝에 발견한 게 영화였죠."

그는 2010년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단편영화 제작 수업을 들었다. 수업의 결과물인 단편 '소녀의 방'(2011)은 김 감독이 연출한 공식적인 첫 번째 영화다. 이 영화는 이듬해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경쟁 부문에 출품돼 "실사화된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이미지가 진득하게 묻어 있는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김 감독의 이런 행보는 황 프로듀서의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워크숍 참여로 이어졌다.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김 감독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조금씩 도와준 게 시작이었어요. 영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고,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워크숍까지 참여하게 됐죠. 그때 처음으로 시나리오도 쓰게 됐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협업이 시작됐다. 김 감독은 대구 다양성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힘입어 후속작인 단편 '고추가 사라졌다!'(2013)를 완성했다. 황 프로듀서와 함께한 첫 작품이었다. 이들은 이후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애플시네마 대상을 수상한 단편 '중고, 폴'(2016)을 찍고 한동안 영화 제작을 쉬었다. 황 프로듀서가 말했다.

"독립영화 제작은 창작 지원금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사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마을 벽화 작업을 하거나, 심지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아파트 벽화 작업까지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는데 많이 힘들더라고요. 미래가 안 보였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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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의 한 장면. 고라니북스 제공

◆고라니북스 통해 영화·출판 병행

이들은 이젠 영화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으로 2019년 의성에 정착했다. 이들의 의성행은 흔히 시골로 들어간다고 하면 떠올리는 '귀농'과는 달랐다. 당시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사업'이 제공하는 창업 자금을 활용해 창작 활동을 이어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은 의성 안계시장길에 작업실과 작은 갤러리를 내고 '고라니북스'라는 이름으로 독립출판물을 제작했다.

고라니북스라는 이름은 이들이 답사를 위해 의성을 찾았을 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외곽 도로변에서 차량 불빛을 보고도 멀뚱히 서 있는 고라니를 본 순간 자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후 또 다른 장소에서는 들판을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보게 됐는데, 저렇게 자유롭게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라니북스'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창 책 만드는 일에 집중할 무렵,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게 된 것이었다.

단편 '평야의 댄서'(2021)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후 이들은 다양한 제작 지원 사업에 힘입어 장편 '더 납작 엎드릴게요'(2023)부터 최근작인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2026)까지 6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다. 김 감독은 "돌이켜 보면 출판 일을 하면서 영화에 활용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연이어 제작 지원 공모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첫 장편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고라니북스가 펴낸 헤이송 작가의 동명 에세이집이 원작입니다. 2024년 1월엔 '더 납작 엎드릴게요'의 주연 배우와 조연출, 황 프로듀서, 그리고 저까지 네 명의 글을 모은 '아늑한 세계'라는 책을 냈는데, 이 가운데 세 편을 다시 영화로 만들었죠."

출판사 이름처럼 잠시 갈 곳을 잃었던 이들이 다시 영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이 고라니북스였다. 그렇게 고라니북스는 출판사이자 영화 제작사가 됐다.

지금 의성에는 고라니북스가 없다. 몇 해 전 집주인이 퇴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읍소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경북 경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하지만 의성을 떠났다고 해서 출판사 고라니북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무실은 사라지고 없지만, 이들은 영화 제작 일정이 비는 시기를 활용해 고라니북스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독립출판물을 제작해 왔다.

요즘 이들은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장편 기획·개발 지원 사업에 선정된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각자 한 편씩 제작하고 있다. 이 기술을 영화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두 사람만의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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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 포스터. 영화를 연출한 김은영 감독이 직접 디자인했다. 고라니북스 제공

◆10년 뒤에도 지금 이 자리에 있을 것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일, 특히 지방에서 영화를 만드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15년이라는 세월을 견디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원동력은 '동료와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회화 작업의 경우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는 반면,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만들어가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런 부분이 때론 힘들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굉장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혼자였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다양한 부분에서, 동료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작업이 좀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큰 것 같습니다."

황 프로듀서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때는 기약 없이 혼자 계속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막연하고 힘들었던 반면, 영화 제작은 직장인이 출근하듯 현장에 가면 그날그날 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늘 즐거웠단다. 이런 이유로 그는 영화를 하면 할수록 영화 작업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10년 뒤 모습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서로를 잠시 쳐다보더니 웃으며 답했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겠죠. 틈틈이 책도 만들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