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청이 보완수사를 벌였다.'
앞으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문장이 지난 8일 등장했다. 경찰이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불송치했던 '안산 10대 아르바이트생 성폭행 사건'을 수원지방공소청 안산지청이 직접 보완수사한 끝에 결론을 뒤집어 40대 주점 업주를 준강간 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공소청은 올해 10월 2일 부로 검찰청 폐지와 함께 출범했다. 새 제도에서 공소청 검사는 원칙적으로 직접수사는 물론 직접 보완수사도 할 수 없다.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하면 경찰이나 중대범죄수사청 등 수사기관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소청 보완수사'가 가능했을까. 답은 제도 전환기의 경과규정에 있다.
◆검찰 때 시작해 공소청에서 끝냈다…90일짜리 '과도기'
안산 사건은 공소청 출범 뒤 새로 수사에 착수한 사건이 아니다.
경찰이 지난 2월 피해자의 성폭행 신고를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한 뒤 피해자 측 이의신청에 따라 기존 검찰청으로 사건이 넘어갔고, 수원지검 안산지청이 직접 보완수사를 진행해왔다. 그 사이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조직 이름이 공소청으로 바뀌었다.
개정 제도는 기존 검찰에서 수사 중이던 사건 가운데 공소시효가 임박했거나 사건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공소청 검사가 시행일부터 최장 90일 동안 종전 규정에 따라 수사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경과조치를 뒀다. 기간 안에 끝내지 못하면 경찰이나 중수청 등으로 넘겨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엄밀히 말하면 '검찰청에서 시작한 보완수사를 공소청이 이어받아 끝낸 사건'이다. 공소청 체제에서 새로 만들어질 수 있는 보완수사 모델은 아니다.
◆경찰은 '혐의없음'…원본 CCTV·포렌식 다시 보니 달랐다
사건 내용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경찰은 주점 내부 CCTV에서 사건 전후 피해자와 업주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이동한 모습 등을 근거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는 불송치 통보 사흘 뒤 숨졌는데, 휴대전화에는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성관계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이의신청서가 남아 있었다.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수사팀은 CCTV 원본 영상을 다시 분석하고 업주의 휴대전화를 압수·포렌식했다. 참고인 진술과 혈액·소변 감정 결과, 의료 자문도 다시 모았다. 그 결과 범행 직전 업주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피해자를 뒤에서 부축해 CCTV 사각지대로 데려가는 장면이 확인됐다.
피해자가 술과 복용약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의사소통과 보행이 어려운 상태였다는 의료적 판단, 두 사람이 평소 이성적 호감을 주고받던 관계가 아니었다는 대화 내용, 피해자가 사건 직후 지인에게 울면서 피해 사실을 말한 녹음파일도 확보됐다. 경찰이 '무혐의'라고 판단한 사건을 직접 증거를 다시 확보해 뒤집은 것이다.
◆이런 장면, 과거에도 있었다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가 경찰 결론을 뒤집은 사례는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에서는 경찰이 자살로 종결했던 사건을 검찰이 CCTV와 저장매체 등을 다시 확인해 살인 혐의를 밝혀냈고,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도 추가 보완수사를 통해 범행의 성격이 더 무거운 성범죄로 규명됐다.
생후 4개월 영아 학대 사망 사건 역시 검찰의 보완수사를 거치며 경찰 단계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범죄 정황이 확인된 사례로 거론된다.
이 때문에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 과정에서도 "경찰 1차 수사의 오류를 누가 실질적으로 바로잡을 것인가"가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장윤기 사건을 거론하며 임의적인 사실확인만으로는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찾아내기 어렵고, 검찰이 직접 압수수색과 증거 재검토를 했기 때문에 실체가 드러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직 90일은 남았다…MBK·노태우 일가 사건 등도 '마지막 수사'
'공소청이 수사한다'는 낯선 표현 자체도 당분간은 더 등장할 수 있다. 공소청에는 검찰청 시절부터 수사하던 사건들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 관련 사건과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 관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공소청은 이들 기존 수사 사건을 경과기간 안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기한을 넘기면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한다.
주목할 만한 워딩이 있다. 안산 사건을 마무리한 공소청 관계자는 "범행 전후 사정과 객관적 증거들을 토대로 경찰의 애초 불송치 결정과 달리 피고인의 준강간 혐의를 입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에게 죄질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마지막 문장이 새 형사사법체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에는 공소청이 직접 CCTV를 다시 보고, 휴대전화를 압수해 포렌식하고, 의료 자문을 받아 경찰의 결론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새로 발생하면 공소청 검사는 직접 그렇게 할 수 없다. 경찰이나 중수청에 "다시 수사해 달라"고 요구하고, 돌아온 기록을 토대로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경찰은 보완수사 요구를 원칙적으로 1개월 안에 처리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일단 기소한 뒤 공소청이 할 수 있는 핵심 역할은 관계자의 말 그대로다.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안산 10대 알바생 사건에서 등장한 '공소청의 직접 보완수사'라는 표현은 그래서 단순한 기관명 변경의 어색한 문장이 아니다. 검찰청 시대와 공소청 시대가 잠시 겹쳐 있는 앞으로 길어야 90일 동안만 볼 수 있는, 제도 전환기의 문장이고, 이에 대해 여전히 상당수 국민들이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