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불교사진가 류태열이 남쪽(청도)으로 간 까닭은

입력 2026-10-07 15: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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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경북 청도군 각북면에 정착… "불교 사진은 내 숙명"

류태열 사진가는 70대가 되면 불교 유산이 많은 동남아 국가에 1년에 1곳씩 머물며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본인 제공
류태열 사진가는 70대가 되면 불교 유산이 많은 동남아 국가에 1년에 1곳씩 머물며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본인 제공

대구 달성군 가창면 끝자락 최정산. 이 산자락으로 난 고갯길 헐티재를 넘으면 경북 청도군 각북면이다. 각북면 외곽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가정집을 개조한 정원 딸린 카페가 하나 있다. '이런 곳에 카페가?'란 생각이 들 법한 의외의 장소에 들어선 소박한 공간. 류태열(65) 사진가의 일터이자 작업장이다.

그는 30년 넘게 불교 미학에 천착하며 흑백사진을 고집해왔다. 2011년엔 사진을 기반으로 한 문화공간을 목표로 대구 중구에 '태 갤러리'라는 대구 첫 사진 전문 갤러리를 열고 사진 강좌를 열며 10년 동안 운영했다.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관장이던 사진가 이상일의 '오온' 시리즈로 개관전을 열고, 이어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흔적을 기록한 사진가 이재갑의 전시회를 여는 등 그동안 '태 갤러리'가 없었다면 대구에서 보기 어려웠을 법한 전시도 제법 선보였다. 그런 그는 2021년 '태 갤러리' 문을 닫고 경북 청도에 정착한다.

"갤러리 건물 임차료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오른 게 이유였어요. 마침 청도의 한 갤러리에서 디렉터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아 청도로 오게 됐죠."

당시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였기에 전시를 여는 데 제약이 많았다. 갤러리 대표와 의견 충돌도 종종 생겼다. 그렇다 보니 갤러리도 문을 닫는 날이 많아졌다. 류태열 사진가는 자신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갤러리를 나와 지금의 공간을 마련했다. 2024년 3월의 일이다. 그는 현재 이곳에서 손님들을 위해 커피를 내리며 정원을 가꾸고 사진 작업을 한다.

류태열 사진가가 2017년 발간한 마애불 사진집을 펼쳐보이며 팔공산 갓바위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류태열 사진가가 2017년 발간한 마애불 사진집을 펼쳐보이며 팔공산 갓바위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차용부 작품집에 이끌려 사진 시작

그가 카메라를 처음 잡은 건 1984년. 지체장애 특수학교인 대구성보학교에서 목공 실기교사로 근무할 때였다. 이 학교 아이들을 촬영하던 차용부 사진가를 보게 됐고, 이후 그의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집 '빙점에서 만난 아이들'을 접하게 된다. 지체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삶을 통해 사회적 소외를 드러낸 그의 작품은 그에게 큰 울림을 줬고, 사진에 매료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엔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기 위해 사진단체에 가입한다. 회원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룹전에 참여하는 활동을 5년 정도 했다. 문득 이런 식의 작업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만의 사진'에 대한 고민이 1년 동안 이어졌다. 사진을 계속할 거라면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기록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시작한 게 '장승' 촬영이었다.

그렇게 찍은 결과물을 모아 1991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가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가 30년 넘게 불교 사진에 천착하게 된 것도 장승 작업이 계기가 됐다.

"카메라를 처음 들던 시절엔 사진만 잘 찍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작업을 해나갈수록 공부도 필요하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도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게 됐죠. 장승 작업을 하면서 샤머니즘과 관련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관련 공부를 하면서 불교 사찰에 산신각, 칠성각, 용왕각 같은 전통적인 토착신앙이 결합돼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돌이켜보면 이런 호기심이 저를 불교 사진으로 이끈 것 같습니다."

류태열 사진가가 2009년 촬영한 갓바위. 본인 제공
류태열 사진가가 2009년 촬영한 갓바위. 본인 제공

◆마애불 작업…미국 전시로 이어져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한 번씩 절에 가는 정도였던 그에게 불교를 알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머리는 복잡해져만 갔다. 수많은 불교 용어도 큰 장애물이었다. 공부가 힘에 부칠 때면 '아! 이걸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끝에 떠올린 소재가 마애불이었다. 1995년 무렵부터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마애불을 찾아다녔다. 스님들과도 조금씩 친분이 쌓였다. 그는 2008년 팔공산 갓바위를 제대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선본사 주지 덕문 스님을 수차례 찾아가 촬영 허락을 받아낸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전까지 갓바위 사진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찍은 것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갓바위 부처상 옆 바위에 올라가 갓바위가 바라보는 산 아래 시가지를 함께 담아보고 싶었어요. 이런 이유로 선본사를 수차례 찾아갔죠. 어느 날 '오늘은 무조건 주지 스님을 만나 봬야 된다'는 생각으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덕문 스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그거 하루면 되냐'고 물으시길래 전 '1년을 작업해야 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예측할 수 없는 기후와 특정 시간대를 잘 활용해 극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게 작가의 마음인데, 아무 때나 가서 찍는 게 무슨 예술성이 있겠냐고 설명을 드렸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곤란하다'였어요. 이후 몇 차례 더 주지 스님을 만난 끝에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죠."

덕문 스님 덕분에 2009년 한 해 동안 원 없이 갓바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간절히 원했던 사진도 얻었다. 한겨울 산 위에서 노숙을 하며 동이 트는 순간 촬영한 사진이었다. 그렇게 그는 15년간 전국 120여 곳을 찾아다니며 200점에 가까운 마애불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촬영한 마애불 사진은 대구사진비엔날레 기획전을 통해 공개됐는데, 해외 리뷰어로 참여한 미국의 전시기획자의 눈에 들어 2011년 미국 휴스턴에 있는 포토페스트 갤러리 초대전으로 이어졌다.

사진가 구본창은 2007년 류태열 사진가가 경주 선도산에서 찍은 마애불 사진을 구입하기도 했다. "교수님이 가셔서 직접 찍으시면 될 텐데 뭐 하러 사진을 구입하시냐"는 류태열 사진가의 물음에, 구본창 사진가는 "당신은 10년이란 시간을 투자했다. 내가 아무리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맞춰 찍는다고 하더라도 저 사진만큼 찍을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류태열 사진가를 뭉클하게 만든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화엄사 사진집에 실린 류태열 사진가 작품. 본인 제공
화엄사 사진집에 실린 류태열 사진가 작품. 본인 제공

◆봉정사·화엄사서 찾은 '절의 혼'

마애불 촬영은 사찰 촬영으로 이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 봉정사 측에서 2017년 사진집 제작을 의뢰했다. 매주 4일씩 절에 머물며 1년가량 촬영을 이어가며 봉정사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았다. 그렇게 만든 도록은 2018년 출간됐다.

이 작업이 끝난 직후 갓바위 촬영 때 인연을 맺은 덕문 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스님은 주지로 있는 구례 화엄사를 담은 사진집을 내자고 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역사책 같은 사진집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갓바위 촬영 때처럼 류태열 사진가만의 시각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절의 혼'(Soul of the temple)이라는 주제 아래 조화, 문, 도, 고요, 공 등 10개의 테마를 정하고 1년간 절집을 오가며 작업했다.

"사진가로서 가장 행복했고 최고의 대접을 받은 게 이때가 아닐까 합니다. 주지스님께선 제가 촬영하는 데 작은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죠. 힘든 작업이었지만 결과물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그의 꿈은 조계종 산하 25개 교구 본사 중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찰을 선정해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다. 팔공산에는 교구 본사가 두 곳(동화사·은해사) 있다. 그는 앞서 은해사에 딸린 거조암 영산전(국보)에 있는 오백나한상을 하나하나 촬영했는데, 장소 섭외 문제 등으로 아직 사진전을 열지 못하고 있다. 2024년 대구 갤러리토마에서 전시회를 연 이후 개인전을 못 했던 만큼, 오백나한을 테마로 개인전을 여는 것도 지금 풀어야 할 과제라고 그는 말했다.

"어쨌든 세월이 더 흘러도 불교사진이란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청도에 마련한 이 공간을 10년간 계약했으니 이제 7년쯤 남았네요. 7년 정도 한국에서 하고 싶은 작업을 모두 마친 뒤, 이후엔 불교 유산이 많은 동남아 국가에 1년에 1곳씩 머물며 작업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그때면 70세가 넘어서 제대로 다닐 수 있겠냐고 우려하시는 분도 있는데 크게 걱정되진 않습니다. 오히려 사물을 바라보는 깊이가 좀 더 깊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