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창단 4주년 맞은 2·18합창단 "'안전한 사회'로 가는 밑거름 되길"

입력 2026-09-30 13: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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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봉(가운데) 2·18합창단 지휘자와 황명애(왼쪽)·김성기 단원이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2층 대연습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김도훈 기자
김산봉(가운데) 2·18합창단 지휘자와 황명애(왼쪽)·김성기 단원이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2층 대연습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지난 21일 오후 7시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2층 대연습실. 본격적인 합창 연습을 앞두고 김산봉(54) 지휘자와 50여명 합창단원의 대화에서 화기애애함이 묻어났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잠시, 연습 시작을 알리는 지휘자의 말에 따라 단원들은 곧바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반주가 시작되고 지휘자가 신호를 보내자 단원들이 서서히 고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18합창단' 연습 현장이다.

이날 현장에선 발성부터 표정까지 세세히 챙기는 지휘자와, 매주 함께 노래를 불러온 단원들 사이 신뢰가 묻어났다. 이들의 호흡에서 합창단이 지난 4년간 쌓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합창단은 오는 10월 3일 오후 6시30분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서 '대구지하철참사 23주기 추모 및 2·18합창단 제4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2·18합창단 단원들이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2·18합창단 단원들이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안전한 사회' 꿈꾸며 2022년 창단

합창단은 이름처럼 2003년 2월 18일 대구 중앙로역 지하철화재참사와 관련이 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음악을 통해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전하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로 2022년 7월 창단했다. 황명애(68)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로 대학입학을 앞둔 어린 딸을 잃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가 엄마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죠. 세월이 가면 다른 어떤 것도 할 게 없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마음을 늘 품고 살았어요. 20년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젠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합창단 기획서를 만들어 2·18안전문화재단에 전달했죠. 재단 측에서도 흔쾌히 '좋다,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취지에 공감하는 시민과 유가족 40여명이 모였다. 황 사무국장은 평소 눈여겨봤던 김산봉 지휘자에게 지휘를 부탁했다. "그날의 상처로 늘 울분에 차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정말 슬프고 아픈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선생님이 딱 그런 분이셨죠."

김 지휘자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맡고 있는 합창단이 7팀이나 됐기에 도저히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을 늘 추구한 사람인데 아픔을 노래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고민도 컸다.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린 건 '그날의 기억'이었다.

"제안을 받은 이후 참사 당시 느꼈던 제 감정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몸이 좀 고되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황 국장님과 유족들을 만나 이런 얘기는 드렸어요. 그동안 우리가 시민들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많이 받았으니, 이젠 우리가 아름답고 희망찬 노래로 시민들이 받은 충격과 상처를 치유해드리면 어떻겠나고요. 그렇게 의견을 모으게 됐고 합창단이 꾸려지게 된 겁니다."

김산봉(가운데) 2·18합창단 지휘자와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합창 지도를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김산봉(가운데) 2·18합창단 지휘자와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합창 지도를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매년 새로운 기획…메시지 전해

2·18합창단은 40여명의 혼성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50대 중반 이상이 대다수로 71세 단원이 최고령자다. 처음엔 유가족 단원들이 10명쯤 있었지만, 각자 사는 곳이 멀고 나이가 들면서 엽습에 참여가기가 힘들어 하나 둘 빠지게 되면서 지금은 황 사무국장이 유일한 유가족 단원이다.

단원 중엔 대구지하철 운영 주체인 대구교통공사 직원도 포함돼 있다. 김성기(55) 대구교통공사노동조합 사무국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합창단 창단 때부터 함께 했다.

"지하철화재참사 당시 직원이었고 노동조합 활동을 했었기에 그 때의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유족에 대한 죄송한 감정이나 부채감, 책임의식이 컸죠. 어느 날 노동조합 측으로부터 합창단 창단 소식을 들었는데, '아! 잠시 잊고 있었네'하는 생각과 함께 미안함이 밀려왔었습니다. 대구교통공사 직원이 함께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서 함께하게 됐죠."

단원들은 공연이 없을 때도 매주 월요일 오후 정기적으로 모여 2시간 정도 연습을 한다. 여름 휴가철 1주 정도 쉬는 것을 제외하면 매주 연습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결석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참석률이 좋다. 황 사무국장은 "뜻에 공감해 한두 번 정도는 함께 해줄 수 있지만, 직업도 아닌데 4년을 함께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유족 입장에선 이렇게 함께해주시는 단원들이 무척 고맙다"고 했다.

합창단은 2023년 12월 창단연주회를 시작으로 매년 정기 연주회 외에도 합창제 참가하고 초청 공연을 펼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정기연주회를 통해선 매년 새로운 기획을 통해 합창단의 정체성을 담은 공연을 선보였다.

창단연주회에선 사고 발생 시간대별 칸타타(서사적 합창곡)로 참사를 재조명했고, 2024년 제2회 정기연주회에선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제로 삼았다. 지난해 제3회 정기연주회에선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유족의 삶을 담은 창작곡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펼쳐보였다. 곡은 작곡가에거 위촉했지만, 가사는 유가족 인터뷰를 바탕으로 김 지휘자가 직접 썼다.

"희생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며 부모이고 형제자매였던,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참사'라는 단어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란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개인의 기억을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승화시켜 보자는 생각이었죠."

2·18합창단 단원들이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도훈 기자
2·18합창단 단원들이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도훈 기자

◆23년 전 기억 잊히지 않길

올해 공연 주제는 '생명의 씨앗 희망의 땅'이다. 2·18합창단이 지난 네 번의 연주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가치가 집약된 제목이다. 기억이라는 땅에 생명존중의 씨앗을 심고, 문화와 음악으로 그 씨앗을 키워 안전한 사회와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라는 게 김 지휘자의 설명했다.

올해 공연에선 합창곡 외에도 대중가요를 접목한 미니뮤지컬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2·18합창단 공연을 무겁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다. 지하철 사고를 남편을 잃은 한 가족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았다.

"정기연주회를 보신 분들 중에는 일주일동안 가슴이 먹먹했다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기억이 되살아나서 연주회를 보러가기가 망설여진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이 또한 순기능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아픈 부분만 기억하지 말고 그 속에서 희망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미니뮤지컬을 기획했습니다. 올해 공연 후반부를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음악으로 구성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2·18합창단이 꿈꾸는 미래는 23년 전 그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 것이다. 그 기억을 통해 희망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게 그들의 바람이다. 황명애 사무국장은 "세월이 흘러 지휘자가 바뀌고 노래하는 사람이 바뀌더라도 아픔은 기억하되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합창단으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산봉 지휘자가 말했다. "올해 공연 주제엔 씨앗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참사 이후 전국의 지하철 실내설비가 내연재로 바뀌었듯, 희생자분들이 뿌린 씨앗을 문화와 음악이란 거름으로 잘 키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그게 218합창단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