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대구…산업화 과정 잊힌 물과 남은 '오아시스'
대구 곳곳을 다니다 보면 문득 '여기에 원래 뭐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전 대구는 크고 작은 못과 저수지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물의 도시'였다.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방을 쌓으면서 못과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파트와 시장, 공원과 학교가 들어선 자리지만, 오래전 그곳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던 못과 저수지가 있었다. 참고로 못은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을 말하고, 저수지는 물을 모아 두기 위하여 하천이나 골짜기에 둑을 축조하여 만든 인공적인 큰 못을 의미한다.
18세기 대구의 역사와 지리, 풍속 등을 다룬 '대구읍지'에 대구의 못의 수가 138개라고 나온다. 지금의 도시 풍경만 보면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예전 대구 사람들에게 못과 저수지는 일상의 일부였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을 가두고, 가뭄이 들면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생활 기반이자 마을 공동체의 중심 공간이었다. 도시가 커지면서 없어진 못과 저수지가 셀 수 없이 많이 사라졌지만, 대불지로 알려진 배자못, 감삼못, 천황당지, 범어못, 날뫼못, 송라못 등과 같은 이름들은 오래된 문헌 속에 남아 오늘날 대구의 잊힌 물의 기억을 전해준다.
대구의 못과 저수지에 관한 옛 문헌을 살펴보면 신라의 유명한 학자인 최치원이 쓴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 등루기』에 '불체지', '천황지'라는 저수지가 나온다. 15~16세기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18세기의 『대구읍지』에는 성당지,불상지, 연화지 등의 이름이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1899년, 1907년)에 발간된 『대구부읍지』에 성당제와 감삼제, 대불상제(배자못)와 범어제, 송라제 등 여러 저수지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처럼 대구 지역에 있었던 크고 작은 오래된 저수지는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도시의 팽창과 개발로 매립되어 많이 사라졌다. 북구 종합유통단지 남쪽, 경북대학교 뒤쪽 복현오거리 일대에는 '배자못'이 있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못으로 알려진 배자못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불상제, 불상지, 『대구부읍지』에는 대불상제로 기록되어 있다.
못 주변에 배씨와 채씨가 많이 거주하여 '배채못'으로도 불렸다. 저수지를 축조하다 큰 불상이 발견되어 '대불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지역에 조성된 공원 이름이 바로 '대불공원'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배자못의 둘레는 약 1.3km(4,295척), 수심 약 1.6m(5척3촌)로 『대구읍지』에 기록된 저수지 중에서는 두 번째로 큰 못이었다. 1970년대 중반 검단산업단지가 생기고 대형 아파트 단지와 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배자못은 1990년대 중반에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서구 내당동에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큰 규모의 '감삼못'이 존재했다. 감삼못은 그 자리에 달성고등학교(1973년)와 광장타운 아파트(1984년)가 들어서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감삼못은 둘레가 약 2km(6,410척),수심이 약 2.7m(9척)에 이르렀는데, 대구읍지에 기록된 대구 지역 저수지 중 최대 규모의 못이었다고 한다. 1980년 겨울, 얼음판에서 놀다 빠진 어린이를 미군 헬기가 구조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감삼못이 시민들의 생활공간이자 놀이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은 '감삼못공원'이라는 이름만 남아 도시의 기억을 붙잡고 있다.
또,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는 원래 '천황당(天皇堂)못'이 있던 곳이었다.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한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은 대구읍성의 서문 밖에 있었던 시장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문시장은 1920년대 비산동 일대 달성고분군 발굴 과정에서 나온 흙으로 천황당못을 매립하여 옮겨지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이 한때는 물결이 출렁이던 거대한 못이었다는 사실은 대구 도시 변화의 시간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수성구청과 대구여고가 있던 자리에는 '범어못'이 있었다. 대구읍지에는 이 범어못의 둘레가 약 540m(1,780척), 수심 약 1.5m(5척)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970년대 후반 대구 도시계획에 의해 매립되어 사라졌다. 또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신천역 인근과 동신초등학교 남쪽 일대에 송라못이 자리했다. 송라못은 철도가 생기면서 둘로 갈라져서 한때 '쌍둥이못'으로 불리기도 했다.
남구 대구교대 앞, 영선시장 일대에는 '영선못'이 있었는데 1920년대에 '대구의 명승지'로 소개될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겨울이면 영선못에서 빙상경기가 자주 열려, 시민들이 얼음 위를 누비며 추억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시기를 거치면서 영선못 인근에 대구종합운동장이 조성되었다. 이 영선못은 1970년대에 완전히 매립되어 현재의 영선시장이 되었다.
서구 원대 지하도 일대에는 '날뫼못'이 있었다. 날뫼는 지금의 비산동을 말한다. 날뫼못의 면적은 약 3,300㎡에 수심은 3m가 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서구 평리동 서구청 일대에는 '들마못'이, 수성구 만촌동 화랑공원 내 수성도서관 일대에는 '효목못'이, 수성구 지산동 능인고등학교와 녹원맨션 인근에는 '지산못'이 있었다.
신천동 벤처밸리 네거리 일대에는 골짜기에 둘러싸인 큰 못이란 뜻을 가지는 '한골못'이 있었다. 이처럼 1970년대 이후 대구의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완전히 매립되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춘 못과 저수지가 참 많다. 이러한 대구의 못들은 단순한 물 저장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 기억, 놀이와 풍경이 함께 쌓인 장소였다.
그렇다고 대구의 물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 대구 시내 곳곳에 존재하는 큰 못과 저수지로는 달서구 성당동의 '성당못'과 도원동 월광수변공원 내 '도원지'가 있다. 수성구 두산동에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수성못'과 삼성라이온즈파크가 있는 연호동에 '연호지'가 입지하고 있다. 북구 동호동에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서리지'와 구암동의 '운암지' 등은 여전히 시민 곁에 남아 있다.
그리고 동구 봉무공원 나비생태원으로 유명한 '단산지'와 혁신도시 내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나불지'가 있다. 또 달성군 옥포 송해공원 내에 '옥연지'와 유가읍의 '달창지'가 있고, 군위군 부계면의 '창평지' 등이 있다. 대구시민의 식수 기능을 담당하는 댐 자원으로 달성군 가창면의 '가창댐'과 동구 지묘동의 '공산댐'이 있다.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에 입지한 군위군 삼국유사면의 '군위댐' 등도 있다.
대구시민의 애환이 서린 이들 못과 저수지는 폭염을 물리치는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건네고, 시민들은 그 주변을 산책하고 운동하며 하루를 쉰다. 대구의 못과 저수지는 여가를 즐기는 대표적인 쉼터이자 관광지 기능까지 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대구의 역사는 물을 메우며 성장한 도시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걷는 거리와 학교, 공원과 아파트 단지 아래에는 오래전 물결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