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안경 낄까요?"…재기 노린 이미지 변신? '안경의 정치학' [시사뒷담]

입력 2026-09-12 00:22:40 수정 2026-09-12 00: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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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최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연임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안경을 낄까요?"라고 지지자들에게 물었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61세, 노화에 따라 감퇴하는 시력에 대한 고민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치권에서 안경은 때때로 이미지 변신의 장치로 읽혀온 탓에 정청래 의원의 이번 글 역시 연장선상의 해석을 가미할 만하다.

정청래 의원은 11일 오후 8시 58분쯤 페이스북에 '시력이 안 좋아져서…안경 낄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중3 때 원래 시력이 좋아서 2.0이었는데 6~7년 전부터 점점 시력이 안 좋아져서 책을 볼 때나 연설문을 읽을 때 가물가물 어른거리기도 하고 자꾸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어 "몇 년 전부터 안경을 끼라는 권유를 정말 많이 받았다"면서 "지난 총선 때 지역 안경점에 갔더니 이제 안경을 끼어야 눈 건강에도 좋다더라. 귀찮아서 그냥 있었는데 오늘도 눈이 침침해졌다"고 했다.

정청래 의원은 "그래서 안경 낀 정청래를 챗GPT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만들어 준다"며 안경을 쓴 자신의 가상 이미지 4장을 함께 올린 후 "안경 낄까요"라고 재차 물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생활형 고민이지만 정치권 해석도

정치권에서 안경은 단순한 시력 보정 도구를 넘어 이미지 변화의 신호로 읽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강한 인상이나 거친 발언으로 기억되는 정치인이 안경을 쓰기 시작하면 보다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덧입히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르곤 했다.

정청래 의원 역시 최근 전당대회 패배 이후 재정비 국면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당장 2028년 23대 총선 5선 도전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이번 게시물이 단순한 시력 고민을 넘어 일종의 이미지 변신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성격 아니냐는 관측도 가능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MB·文 안경으로 이미지 변신

정치권에서 안경이 이미지 변신의 도구가 된 대표적인 사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백내장 수술 후 눈 보호를 위해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예상 밖으로 "인상이 부드러워졌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당초 일시적으로 착용할 예정이었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계속 쓸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고, 한때 여론조사까지 검토됐다. 치료용 안경이 결과적으로 이미지 관리 용도로 확장된 사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안경 이미지 정치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2012년 첫 대선 도전을 앞두고 갈색 뿔테와 검은 금속테 등 여러 안경을 번갈아 쓰자 당시 언론은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이미지 마케팅'으로 분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안경테 교체 사실이 언론 보도로 나오기까지 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안경테 교체 사실이 언론 보도로 나오기까지 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안경의 저주', 파면 대선에서만 효력정지?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권엔 일명 '대선 후보 안경의 저주'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18대 대선에서도 안경을 쓰지 않은 박근혜 후보가 안경을 쓴 문재인 후보를 꺾으면서 징크스는 이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19대 대선부터 공식이 꼬였다. 안경을 쓴 문재인 후보가 역시 안경을 쓴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물론 안경을 쓰지 않은 안철수 후보까지 모두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대 대선에서는 다시 안경을 쓰지 않은 윤석열 후보가 안경을 쓴 이재명 후보를 48.56% 대 47.83%로 꺾으며 '안경의 저주'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21대 대선에서는 안경을 쓴 이재명 후보가 안경을 쓴 김문수·권영국 후보는 물론 안경을 쓰지 않은 이준석 후보까지 제치고 당선됐다.

안경을 쓰고 대선에서 당선된 사례에 포함되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월 자신의 고향 경북 안동을 찾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로부터 선물 받은 안경을 쓰고, 다카이치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안경을 바꿔 쓰는
안경을 쓰고 대선에서 당선된 사례에 포함되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월 자신의 고향 경북 안동을 찾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로부터 선물 받은 안경을 쓰고, 다카이치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안경을 바꿔 쓰는 '안경' 테마의 친교 일정을 소화해 화제가 됐다. 청와대 제공

그런데 '안경의 저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19대와 21대 대선은 모두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뒤 치러진 조기대선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7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뒤, 2025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뒤 선거가 치러졌다.

굳이 '안경의 정치학'으로 비틀어 보면 이렇다. 평상시에는 후보 얼굴에 걸린 안경테가 이미지의 프레임이었다면, 비상 시국을 겪은 후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이미 '대통령 파면'이라는 훨씬 도수 높은 렌즈를 끼고 선거를 바라본 셈이다. 후보가 무슨 안경을 썼느냐보다 정국 자체가 만들어낸 렌즈가 훨씬 강력했던 것 아닐까.

한편, 대선과 달리 '저주' 같은 표현이 붙는 우스갯소리는 딱히 없으나, 안경을 끼지 않는 정청래 의원은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안경을 낀 김민석 대표에게 져 낙선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김민석 전 총리(오른쪽)가 지난 8월 17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회 더불어민주당 정기 전국당원대회에서 당 대표직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였던 정청래 전 대표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김민석 전 총리(오른쪽)가 지난 8월 17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회 더불어민주당 정기 전국당원대회에서 당 대표직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였던 정청래 전 대표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