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정치학' 김승원 청탁 의혹 이전 신정아 사건·민주당 돈봉투·김건희 카톡·하정우 유세에서도 [금주의 이슈]

입력 2026-09-06 02:06:22 수정 2026-09-06 02: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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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정국에 난데없이 '오빠'가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신약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에서 정치권 인맥을 가진 사업가 양모 씨가 김승원 후보자를 부른 호칭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한 TV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이 사건이 향후 '오빠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오빠'가 논란의 한복판에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청탁 의혹부터 돈봉투 사건, 공천개입 논란을 거쳐 최근 선거 유세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반복해 등장한다. 서로 무게와 성격이 전혀 다른 사건들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공적 직함 대신 사적 친밀성을 드러내는 오빠 같은 호칭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오빠의 정치학'이다.

김승원. 연합뉴스
김승원. 연합뉴스

◆"오빠가 도와주면"…녹취록 속 주인공 '승원 오빠'

김승원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에서 '오빠'라는 호칭은 최근 한동훈 무소속 국회의원이 잇따라 공개한 과거 녹취록에 등장한다.

한동훈 의원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2021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업체 제넨셀의 임상시험 승인 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브로커로 지목된 양모씨는 김승원 후보자를 '오빠'라고 불렀다.

김승원 후보자와 양씨 사이 녹취에는 양씨가 임상시험 문제를 설명하며 "오빠가 들어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고, 김승원 후보자는 이후 김강립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담당 실무진이 관련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이후 해당 치료제의 임상 2·3상 시험계획을 승인했다.

'승원 오빠'라는 표현은 한동훈 의원이 추가 공개한 다른 녹취에도 등장했다. 2021년 10월 양씨가 제3자와 나눈 통화에서 양씨는 "인허가 푸는 거는 승원 오빠"라며 김승원 후보자가 식약처장에게 이야기했고 보건복지부에도 추가로 요청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녹취에서는 양씨가 제넨셀 측 인사에게 "승원 오빠 캐시 2천 쥐어주려고 그랬다"는 취지로 말한 내용도 공개됐다. 한동훈 의원은 이를 근거로 김승원 후보자가 사적 친분을 바탕으로 인허가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임상시험 승인 이후 양씨가 업체 측에 김승원 후보자에게 정치후원금 500만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정황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는데, 김승원 후보자의 연간 후원금 한도가 이미 채워져 실제 송금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승원 후보자는 당시 식약처에 연락한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국내 업체의 민원을 전달한 것일 뿐 부정한 청탁이나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검찰 역시 2024년 12월 직접적인 금품 수수가 없고 청탁 내용의 위법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김승원 후보자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김승원 후보자는 이 처분마저 부당하다며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윤관석, 이정근. 연합뉴스
윤관석, 이정근. 연합뉴스

◆"오빠 호남은 해야 돼"…돈봉투·권력형 의혹에도 등장

더 직접적인 전례는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과 윤관석 전 의원 간 통화 녹취에는 돈봉투를 전달할 의원들의 이름이 오갔다. 윤관석 전 의원이 호남 지역 의원들을 거론하자 이정근 전 부총장은 "거기 해야 돼 오빠" "오빠 호남은 해야 돼"라고 답했다. 여기서 '오빠'는 돈봉투 배포라는 은밀한 정치행위가 논의되는 내부자들의 언어였다.

윤관석 전 의원은 이후 현역 의원들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경선캠프에서 6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신정아, 변양균. 연합뉴스
신정아, 변양균. 연합뉴스

2007년 벌어진 '신정아 사건'에서도 같은 호칭이 등장했다.

신정아 씨는 법정에서 문자메시지 속 '오빠'가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뜻한다고 인정했다. 검찰은 신씨가 지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예일대 오빠에게 본드처럼 달라붙어서" 후원금을 얻어냈다는 취지의 내용도 공개했다. 연인이라는 사적 관계와 고위 공직자의 권한 행사가 뒤섞였다는 의혹이 오빠라는 한 단어에 압축된 셈이다.

다만 변양균 전 실장이 신정아 씨의 성곡미술관에 기업 후원을 끌어다줬다는 뇌물 관련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별도의 사찰 특별교부세 압력 혐의만 유죄였다. 참고로 변양균 전 실장은 신정아 씨를 "쩡아야"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김건희, 명태균. 연합뉴스
김건희, 명태균. 연합뉴스

◆尹정부 시절 대통령실까지 해명한 '우리 오빠'

2024년엔 '오빠가 도대체 누구냐'는 물음이 정치 쟁점이 됐다. 타깃은 일반 정치인들이 아닌 대통령실(현 청와대)이었다.

명태균 씨가 공개한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김건희 씨와의 메시지에는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당시 김건희 씨의 공천개입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었던 만큼 정치권은 술렁였다.

대통령실은 여기서 '오빠'가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김건희 여사의 친오빠라고 공식 해명했다. 평범한 가족 호칭의 지시 대상까지 대통령실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

올해 5월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 당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부산 구포시장 유세 중 초등학생에게
올해 5월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 당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부산 구포시장 유세 중 초등학생에게 "오빠"라고 부르도록 재촉하는 모습.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캡처

◆정우 오빠와 청래 오빠…오빠라 하면 찍어주나?

가장 최근에는 정치인이 친밀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직접 '오빠'를 언급했다. 올해 5월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서 정청래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같은 당 하정우 후보를 가리키며 "여기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일자 두 사람은 사과했다. 아동학대 혐의 고발이 이뤄졌지만 경찰은 학대로 보기 어렵다며 불송치했고 검찰도 같은 판단을 내려 수사는 종결됐다. 이 사건은 정청래 대표가 2025년 대선 유세에서도 젊은 여성들에게 자신을 '청래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던 영상을 소환하기도 했다. 원래 그런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국민들에게 박혔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을 같은 저울에 올릴 수는 없다. '오빠'라는 호칭이 불법의 증거나 청탁의 필요조건인 것도 아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정치적 호칭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사적 관계에서는 '오빠'로 불리는 순간, 정치적 위기가 발생한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 상당수는 '패가망신'했다. 어떤 경우 부탁(청탁)에 돈이 그 뒤를 따랐고, 어떤 경우에는 공천 의혹을 만들었으며, 최근엔 정치인이 유권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연출 수단으로 사용했다가 혼쭐이 났다.

'오빠 게이트'가 김승원 후보자 의혹을 둘러싼 정치적 명명이라면, '오빠의 정치학'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한국 정치의 오래된 병폐를 다루는 제목이다. 본질은 '오빠'라는 단어가 붙으면 공적 권력과 사적 관계를 뒤섞여 문제를 만드는 한국 정치의 희한한 소통 구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