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 영혼을 기억하다
역사적 사건들은 그 날짜로 기억되고 있다. 9·11테러-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트윈 빌딩이 알카에다의 항공기 납치·충돌로 무너진 2001년 9월 11일은 25년 전 사건이었다. 그날 아침, 두 대의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차례로 충돌하면서 102분 만에 두 개의 초고층 타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적 고층 건물을 목표로 한 테러는 단순한 건물의 파괴가 아니라 패권 국가 미국의 상징과 자존심을 붕괴시킨 것이다.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은 1973년 완공 시 세계 최고층(110층) 건물이었다.
국가와 도시의 랜드마크를 잃은 빈자리는 또 다른 과제를 크게 남겼다. 그 자리에 무엇을 채우고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 그러나 뉴욕 시는 채우고 세우기보다는 먼저 다른 질문을 던졌다. 테러의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이 질문이 바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를 만든 출발점이었다.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는 맨해튼 남단 월스트리트에 고층 건물을 다시 세우는 단순 재개발 사업이 아니었다. 추모(Memory), 도시재생, 교통 인프라, 문화시설이 통합되는 21세기 도시 건축은 시민과 행정가, 건축가, 엔지니어, 조경가들이 함께 기억을 세우고 희망을 완성하는 프로젝트였다.
◆기억을 먼저 세운 도시계획
그 이듬해, 2002년 국제현상설계공모에서 최종 당선된 건축가는 베를린 유대인기념관을 설계한 다니엘 리베스킨드였다. 'Memory Foundations' 설계안은 '새로운 건물 이전에 먼저 기억을 세워야 한다'는 건축 철학을 담고 있었다.
사라진 건축의 자리에는 건물을 세우지 않는다는 획기적 제안이었다. 그 공간을 비우고 붕괴된 지하 바닥(Footprints)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었다. 다시 새 건물을 세우지 않고 비워 둔 공간이 곧 9·11 메모리얼 핵심 공간으로, '빛의 쐐기(Wedge of Light)'라는 상징적 개념이었다. 태양 고도에 따라 매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첫 번째 충돌 시각부터 오전 10시 28분 북쪽 타워 붕괴 시각까지 추모광장에는 햇빛이 비치도록 설계했다.
◆프리덤 타워, 건축의 변경
설계 당선작 '프리덤 타워(Freedom Tower)'는 메모리얼 핵심 공간 주변으로 배치하는 빌딩으로, 낮은 건물에서부터 점점 높은 타워로 이어지는 상승감이 있다. 최대높이 1,776피트(541m)는 미국 독립선언 1776년을 상징하며 최종적으로 건립된 타워는 강 건너 리버티섬 자유의 여신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실시설계 과정에서 뉴욕의 세계적 설계회사 S.O.M으로 변경, 초기 당선작은 전반적으로 수정된다. 건물 명칭도 '프리덤 타워'에서 'One World Trade Center'로 보다 현실성과 경제성을 반영하는 일반적 형태로 완성되었다.
◆'비어 있음'으로 기억하는 9·11 메모리얼
붕괴돼 사라지고 비워진 그 공간이 곧 그라운드 제로의 중심인 9·11 메모리얼이다. 쌍둥이 빌딩이 서 있었던 자리는 물의 공간이다. 잔잔한 물은 사방의 벽면을 타고 끊임없이 쏟아져 내린다. 영혼의 눈물이다. 검은 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바닥 중앙의 블랙홀 속으로 사라진다.
그 아래층 공간은 바로 눈앞에서 흘러내리는 영혼의 눈물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는 메모리얼이다. 실존의 부재와 영혼의 존재를 바라보게 하는 눈물이다. 9·11 메모리얼은 현대적 추모 건축의 대표적인 공간이 됐다.
희생자 2천977명(펜타곤과 펜실베이니아 사상자 포함)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패널이 물의 공간 둘레를 이룬다. 단순한 이름의 나열이 아니다. 희생자들의 관계성을 고려해 동료와 가족, 구조대원 등 서로 가까웠던 이들의 이름이 인접해 새겨져 있다.
이름 위 곳곳에 놓인 하얀 장미송이는 희생자의 생일을 잊지 않고 기리는 관리소의 배려다. 공원을 채운 400여 그루의 참나무 가운데에는 9·11 당시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나무도 보존돼 생명을 상징하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 도시의 기억
공원의 9·11기념관(스뇌헤타 설계)은 장소의 기억(The Power of Place)을 전시한다. 지하로 연결하는 경사로를 따라 지하 깊숙이 내려가면서 붕괴 당시 건축의 구조 철골 잔해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지하 20m 바닥이 그라운드 제로이다. 허드슨강의 수압을 막고 있던 벽면 슬러리월(Slurry Wall)은 도시의 회복력과 의지를 상징하는 건축 기념비가 되었다. 슬픔과 불행이 더 내려 갈 곳 없는 바닥, 그라운드 제로는 ▷테러 ▷붕괴 ▷불행 ▷회복 ▷희망 ▷기억 모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영혼의 날개, 오큘러스
지상에는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친 한 마리 새가 있다. 영혼이 비상하듯 날개를 펼치는 형상의 건축 오큘러스(Oculus)는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했다. 빌딩들이 세워지고 이곳 방문객들의 교통 인프라인 지하철, 상업시설, 지하 보행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뉴욕 최대 규모 복합 교통허브 공간이다.
12년 공사 후 2016년 완공된 복합시설과 아트리움은 단순한 이동 공간을 넘어 이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건축이 되었다. 6개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한 타원형의 눈(眼)과 같은 배치다. 실내 높은 천창 눈을 통해 자연 채광이 깊숙이 들어오는 아트리움은 고딕성당처럼 장엄한 공간이다. 높은 천창 위로는 주변 고층빌딩을 바라보는 눈이 된다.
◆기억과 일상의 공존, 도시의 교훈
오늘날의 9·11 메모리얼, 그라운드 제로는 ▷추모공원 ▷기념관 ▷고층 업무 오피스 ▷예술센터 ▷교통허브 ▷상업시설 ▷지하 보행 네트워크가 연결하는 활기찬 도시의 일부분이다. 과거를 박제하는 엄숙한 기념공원이 아니라 기억과 현재가 공존하는 일상이다.
30년 전, 우리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떠올리게 된다. 서울 강남 그 공간은 불행의 기억을 잊은 고급 아파트로 채워져 있다. 오늘날 도시는 초고층 조망권의 시대다. 9·11테러는 세계 각국의 건축 법규와 설계 기준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고층 건물은 아름다움뿐 아니라 재난 대응력을 중시하게 되었다.
◆뉴욕의 밤하늘, 푸른빛
건물이 사라진 이후, 한동안 뉴욕 밤하늘에는 두 줄기의 푸른빛이 뻗어 올랐다. 쌍둥이 빌딩처럼 두 줄기 불빛은 9·11의 강렬하고도 슬픈 빛이었다. '빛의 추모(Tribute in Light)' 라는 설치 미술가의 퍼포먼스 근원지는 500m 떨어진 건물의 옥상이다. 지금도 매년 9월 11일 밤이 되면 두 줄기 푸른빛이 뉴욕의 밤하늘에 솟아오른다. 9·11테러는 종교적 극단주의의 이념적, 정치적, 역사적 갈등의 비극이었다. 갈등을 초월하는 두 줄기 시적 언어이자, 무너지지 않는 빛의 건축이다.
건축가·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