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상북도가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영천(금호) 연장사업에 경산시의 입장을 반영하기로 선회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현일 경산시장과 지역 출신 도의원들이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직접 면담하고 하양읍 도심 이원화와 소음·진동, 교육환경 저해 문제 등 주민들의 깊은 우려를 전했을 때, 이 지사는 "도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행정을 펴는 것이 제1원칙"이라며 "당초 예비타당성조사 통과 노선 준수를 비롯해 주민 피해를 줄일 합리적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주무부서에 즉각 지시했다. 늦은 감은 있으나 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입장 변화를 보여준 이철우 지사와 경북도정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경북도가 방향을 선회한 까닭은 지자체 간 사업 추진 과정에서 결코 깨져서는 안 될 '사용자 부담 원칙'과 직결되어 있다. 대구 1호선 영천 연장선은 전체 5.72km 구간 중 무려 76.3%에 해당하는 4.36km가 경산을 통과한다. 사업의 명분이자 실질적인 수혜지는 영천시임에도, 사업비 조정 과정(예타 2천341억원 → 기본계획 검토 2천945억원 → 대안 노선 2천671억원)에서 변경된 노선 탓에 도심 분열과 환경 피해, 재산권 침해는 고스란히 경산시민이 떠안는 기형적 구조였다. 혜택을 누리는 주체가 그에 비례하는 비용과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용자 부담 원칙에 명백히 어긋나는 일이다.
지역에서는 원칙이 바로잡혔으나 국가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여전히 해당 원칙이 무너지는 현장이 목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정부가 발표한 1천350조원 규모의 대형 메가프로젝트와 그 이면에 숨겨진 '전력망 청구서' 문제다.
정부는 지난 6월 서남권 반도체 거점(800조원)과 AI 데이터센터(550조원) 구축 등 화려한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앞으로 거의 무한대의 전력을 전제해야 함에도, 이를 뒷받침할 송전선로와 변전소 구축에 들어갈 예산과 비용 부담 주체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조차 필요한 전력망 투자 규모와 전체 사업비를 산정하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정치적 치적을 포장하기 위해 화려한 수치만 내놓은 것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호남권 반도체 구축 계획 역시 전력과 용수 등 구체적인 인프라 대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구체적 재원 대책 없이 세금만 끌어다 쓴다면 수도권과 호남을 비롯한 타 지자체들은 정책의 들러리를 넘어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수도권과 특정 대기업이 사업의 수혜를 독점하는 구조에서, 전력 공급에 필요한 비용을 공공재인 세금과 한전의 재정으로 메우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혜택은 특정 주체가 챙기고 송전탑 건설에 따른 환경 파괴와 비용 부담은 전 국민과 지방이 나누어 짊어지는 전형적인 원칙 파기 행위다.
특정 사업이나 지역을 이유 없이 비난하거나 무조건 반대하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반도체와 AI 산업은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의 핵심이며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국가적 과제다. 다만 어떠한 거창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성공적 결과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실행 계획을 구체화하고 실현해 나갈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지역의 소소한 사업이든 국가적 대사든, 성패를 가르는 근본 동력은 '원칙'과 '신뢰'다. 혜택이 있는 곳에 부담이 따른다는 사용자 부담 원칙을 바로 세우고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