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의 사고를 먼저 알리는 AI 기술
누수·수질·노후관 이상 징후 24시간 감지
누수 위치 정확도 91%…시간당 20t 누수 찾아내
도시의 물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 없이 흐른다. 그러나 오래된 수도관의 누수와 이상 징후를 제때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룸기술은 AI(인공지능) 기반 상수관망 플랫폼 'AquaVision.AI(아쿠아비전.AI)'를 통해 수도관망을 데이터로 읽고, 더 안전한 물 공급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구에서 시작된 AI 물 관리 기술
2021년 대구 달성군에서 출발한 ㈜이룸기술은 땅속 상수관망을 다루는 기업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도관의 상태를 데이터로 읽어내는 일, 사고가 나기 전에 이상 징후를 먼저 알리는 일이 이 회사가 하는 일이다.
출발점은 2019년 대구 죽전네거리 상수도관 파열 사고였다. 터진 뒤에 고치는 방식으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다. 사명의 '이룸'에는 기후위기 시대의 물 문제를 기어이 풀어내겠다는 뜻을 담았고, 제품 이름 'AquaVision.AI'에는 지하에 묻힌 상수도를 AI로 투명하게 비춰 보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룸기술은 IT 분야에서 축적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상수도라는 전통 산업 현장에 옮겨 심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이해하는 일부터가 벽이었지만, 아무도 먼저 들어가 있지 않은 영역이었다.
◆다섯 개의 눈, 24시간
AquaVision.AI는 상수관망을 디지털 공간에 그대로 옮긴 '디지털 트윈' 위에서 작동한다.
관로에 설치된 센서가 압력과 유량을 보내면, 누수·수질·관로 노후 등을 각각 맡은 다섯 개의 AI 모델이 데이터를 읽는다. 사람이 잠든 시간에도 관망은 계속 감시받는다.
역할은 분명히 나뉜다. AI가 이상 징후를 감지해 알리고, 시스템이 수리해석으로 영향 범위를 계산하며, 최종 판단과 조치는 사람이 한다. 이룸기술이 정의하는 자신의 일은 간명하다. 누수와 수질 사고, 노후관 판별에 대한 알람과 원인 분석, 조치 방안 제시를 전문가가 아닌 AI가 24시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장이 달라지는 지점은 구체적이다. 넓은 지역을 발로 훑던 누수 탐사는 이제 AI가 짚어준 지점만 확인하면 된다. 수질 사고는 주민 신고를 기다리는 대신 센서 알람을 보고 초기에 대응한다. 노후관의 위치가 드러나면 교체 예산을 요구할 근거도 함께 만들어진다. 상수도 운영자는 출근해서 AI가 정리해 둔 위험도 순서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
기술은 외부 검증을 거쳤다. 누수 위치 정확도는 91.18%(공인인증기관 KTL(한국산업기술시험원) 시험 기준), 누수 탐지 F1 스코어는 96.34%(AI 모델 검증셋 평가 기준)를 기록했다. GS(Good Software) 1등급 인증과 특허 4건도 확보했다.
◆현장에서 검증한 시간
이룸기술의 기술은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관망 위에서 자랐다. 실증 현장에서 개발을 병행하던 어느 날, AI가 한 지점을 짚었다. 확인해 보니 시간당 20톤이 새고 있었다. 4인 가구 400세대가 하루에 쓰는 양이 땅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던 셈이다.
정작 어려웠던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토목과 엔지니어링으로 운영돼 온 상수도 분야에 AI와 디지털 트윈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를 현장이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디지털 트윈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만 수십 번을 반복해야 했다.
이룸기술은 현재 제주도,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협약을 맺고 제주 지역 특유의 지질 환경에서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초도 납품도 시작했다. 한국환경공단이 실증에 필요한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를 지원한다.
◆세계를 향한 이룸기술의 도전
지난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물산업 전시회 WEFTEC에서 이룸기술의 부스는 작았다. 바로 옆에는 글로벌 물산업 대기업의 거대한 부스가 있었고, 그곳에서는 '앞으로 이런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기술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룸기술이 이미 구현해 놓은, 바로 그 기술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한민국의 현장과 실시간으로 연결된 화면을 본 참관객들이 한결같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게 정말 지금 작동하고 있는 화면이 맞느냐고.
두 차례 전시회에 맞춰 열린 한미 물기술 혁신 컨퍼런스에서는 국내에서 받아보지 못한 질문도 나왔다. 이 제품을 클라우드에 연결해 구독서비스(SaaS) 형태로 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국내에서는 보안 규정상 아직 어려운 일이지만, 그 질문은 이룸기술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나아갈 여지를 보여줬다.
국내에서도 변화가 이어진다. 이룸기술에 전략적 투자를 집행한 코스피 상장사 ㈜우진아이엔에스는 전통적인 건설 배관설비 기업에서 AI 관제 기술을 결합한 하이테크 배관설비 기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반도체 FAB과 데이터센터 배관설비에 관제 시스템을 얹는 작업, 상수도 시공과 관제를 통합하는 시도가 정부 지원 과제로 진행 중이다.
사람도 모였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200명 규모 개발 조직의 AX 전환을 이끌던 AI 기술전략가가 CTO로 합류했고, 국내 굴지의 온라인몰에서 AI 에이전트를 만들던 개발자들이 차세대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달성에서 시작해, 세계로
이룸기술은 달성군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 자리 잡고 있다. IT 기업이 물이라는 현장을 배운 곳이 여기다. 기술의 뿌리 역시 대구에 있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와 더불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대구경북본부가 3년간 이 제품의 AI 모델 개발을 지원했고, 이룸기술은 그 기술을 이전받아 내재화해 사업화로 이어갔다. 여기에 인근 센서 기업들과의 협업이 더해졌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시스템은 없었다.
오는 9월 대구 EXCO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물주간(KIWW 2026)에서 이룸기술은 지자체별 환경에 맞춰 적용할 수 있는 누수·노후관 판별·수질 사고 초기 대응 통합 관제 플랫폼을 선보인다.
김영섭 이룸기술 대표는 "5년 뒤에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법을 응용해 전 세계 물 부족 문제 해결에 기여한, 대표적인 AI 기반 상수관망 관제 플랫폼으로 불리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곳을 읽어온 대구의 작은 기술기업이, 이제 세계의 물길을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