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9>남 흉내나 내는 원숭이는 되지 않으리!

입력 2026-08-26 0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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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김용준(1904-1967),
김용준(1904-1967), '사제지간 원숭이', 1939년(36세), 삽화, '문장' 1939년 4월호(통권 3호)

우리미술의 "광채 나는 전통"을 깨달으며 1930년대에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전향한 근원 김용준에게 추사 김정희는 빛나는 등대였다. 김정희의 자취를 자신도 밟아보려 한 그는 대가의 창조력을 호 짓기로도 발산한 김정희의 작호(作號) 또한 배웠다. 김정희는 호를 많이 짓기로 유명해 생전에 이미 사람들이 백호당(百號堂)이라고 했다. 과연 백호당 김정희의 호는 300개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정희를 사숙한 제자답게 김용준도 호를 많이 지었다. '근원수필'(1948년)의 '근원'이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의 '검려지기(黔驢之技)'는 자신의 호 이야기다. 여기에 우산(牛山), 선부(善夫), 매정(梅丁), 노시산인(老柿山人), 근원(近猿), 근원(近園), 벽루(碧樓), 석우동인(石隅洞人), 득월루주인(得月樓主人), 심화애설지려(尋花愛雪之廬), 식연자자실주인(食硯煮字室主人), 검려(黔驢) 12개가 나온다. 이외에도 좋아라고 한두 번 쓰고는 잊어버린 호가 몇 개나 되는지 모른다고 했다.

근원(近園)은 원래 근원(近猿)이었다. 김용준은 무슨 인연인지 '가까울 근(近)'자가 잊히지 않았는데 여기에 '원숭이 원(猿)'을 붙여 근원(近猿)이라고 했다. "평생 남의 흉내나 겨우 내다가 죽어버릴" 원숭이 같은 화가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고뇌어린 자조의 심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자학을 통해 분발의 계기로 삼으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원숭이 같은 놈"이라는 이 이름이 마땅치 않아져 근원(近園)으로 고쳤다. 자신을 비하하는 호를 스스로 사용하고 또 그렇게 호칭되다보니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자네의 근원(近園)이라는 호는 단원이나 오원에 가깝다는 뜻인가?"라고 조롱하는 친구도 있으나 "내 취미가 진실로 그렇게까지 저급이 아닌 것만은 명백히 해둔다"라고 했다.

마치 근원(近猿) 호를 설명하는 듯한 그림이 있다. 김용준이 '문장' 잡지에 그린 삽화인 '사제지간 원숭이'다. 두루마리를 합죽선처럼 둥글게 펼친 화면에 늙은 원숭이에게 절하는 어린 원숭이를 그렸다. 스승이나 제자나 할 것 없이 모두 남 흉내나 내는 원숭이 꼴이 바로 요즘 예술가라는 뜻 같다. 스스로를 근원(近猿)이라고 했던 처절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그림이라 그저 냉소에 그치지 않는 울림을 준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