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그랜버드 단종에 현대차 의존
차령 완화·수입버스 규제 쟁점
버스가 필요해도 구할 수 없는 이른바 '버스 수급난'이 현실화하면서 고속·시외버스업계의 감차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버스 생산업체가 줄어든 데다 차량 운행 가능 기간을 제한하는 차령 규제, 수입버스의 국내 안전기준 문제까지 겹치면서 서민과 노인, 학생 등 대중교통 의존도가 높은 이용객의 이동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아 빠지고 현대차만…대형버스 공급망 축소
17일 버스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버스 시장은 공급 기반 자체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국내 주요 버스 생산업체였던 기아가 대형버스 '그랜버드' 생산 중단을 추진하면서 현대차 중심으로 대형버스 생산이 사실상 일원화되는 상황이다. 기아는 지난 6월 노사 고용안정위원회에서 그랜버드 생산 중단 계획을 노조에 통보했다. 생산 중단 시점은 기존 주문 물량이 완전히 소진되는 1~2년 뒤로 알려졌다.
기아의 생산 중단은 한 업체의 사업 철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대형버스 공급자가 줄어들면 운송업체가 차량을 교체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차종과 생산 물량도 함께 감소하기 때문이다. 버스는 승용차와 달리 주문 생산 성격이 강해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단기간에 차량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 경유 대형버스는 신차 계약부터 출고까지 장기간이 걸리고 있다. 강지훈 경전여객 기술부 실장은 "경유 대형버스는 통상 최초 계약부터 신차 출고까지 2년에서 최대 3년이 걸린다"며 "현재 기준으로도 당장 오늘 계약한 차량은 출고까지 26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현대차 중심의 공급 구조도 업계의 불안 요인이다. 기아가 빠지면 현대차가 사실상 유일한 국내 대형버스 공급업체가 된다. 이미 현대차 대형버스에도 출고 대기가 발생하고 있어 기아 물량까지 단기간에 흡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최근 현대차 노조 파업은 잠잠하지만, 노사분쟁 징후가 다시 나타나면 차량 출고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불안도 있다.
대형버스 수급난 우려는 이미 4월에도 제기됐다. 국토교통부는 당시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현대차·기아 등을 불러 대형버스 수급 상황을 점검했다. 당시 기아는 생산 중단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 달여 뒤 기아가 노사 협의 과정에서 그랜버드 생산 중단 방침을 노조에 통보하면서 업계 혼란이 커졌다.
또 다른 육운업계 관계자는 "버스는 승용차처럼 필요할 때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차량이 아니다. 결국 생산업체의 공급 능력이 곧 운송사업자의 차량 확보 능력"이라며 "국내 생산 기반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존 차량까지 법정 차령에 맞춰 교체하면 공급 부족이 감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차령 남아도 8년이면 교체…"규제 완화하면 숨통"
대형버스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차량을 교체해야 하는 차령 규제도 업계의 부담으로 꼽힌다. 법정 차령까지 운행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 운송업체의 차량 교체 시점은 이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현행 제도상 여객자동차는 차종과 사업 유형에 따라 정해진 차령과 연장 기준을 적용받는다. 여객용 대형버스의 차령 연한은 '9+2년'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차량을 최대 11년까지 운행하는 업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역 업계 한 관계자는 "차량이 8년 정도 되면 중고시장에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업체마다 정비 능력에 차이가 있고 차량이 오래될수록 유지·관리 비용도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차량을 더 오래 운행할 수 있도록 차령 제한을 완화하면 수급난에 대응할 여지가 커진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전세버스처럼 차령을 '9+4년'으로 운용할 수 있다면 여객 운송사업자도 차량을 2년 더 활용할 수 있고, 그만큼 정비와 관리에도 신경 쓰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차령 연장으로 신차 출고 지연과 생산 차질에 따른 위험도 일부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차량을 교체해야 할 시점과 신차가 들어오는 시점이 맞지 않아 생기는 운행 공백을 기존 차량의 탄력적인 운행으로 완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일률적인 차령 제한을 두지 않는 방식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건 수입버스로도 공급 부족을 메우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현행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은 자동차 너비를 원칙적으로 2.5m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산 전기버스 중 일부 고상형 대형버스가 국내 기준과 맞지 않아 고속·시외버스 시장에 그대로 투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저상 전기버스 중심으로 확대된 중국산 버스가 시내버스 시장에서는 영향력을 키우고 있지만, 고속도로를 이용해 장거리를 운행하는 고상형 대형버스의 대체재가 되기에는 제도적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대형버스 못 구해 소형버스 투입…결국 이용자 피해 우려
대형버스 수급난은 실제 운송 서비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구혁신도시 수요응답형 대중교통(DRT)은 기존 운송사업자가 45인승 대형버스 수급난을 이유로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새 사업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대구시는 기존 45인승 대형버스 대신 지난달 같은 수송력을 확보하기 위해 16인승 이하 소형버스 13대를 운행하는 방식으로 조건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버스업계에서는 정부가 차령과 차량 수급 상황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요구한다. 안전성이 확인된 차량에 대한 차령 운용을 탄력적으로 하는 동시에 대형버스 생산업체의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순경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이사는 "차량 한 대의 생산 중단이 당장 승객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교체 시기를 맞은 차량이 제때 들어오지 않는 순간 감차라는 형태로 생활 현장에 나타날 수 있다"며 "차령이 도래했으니 폐차하라고 해놓고 새 차량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이용자"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