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인지 감수성

입력 2026-08-12 1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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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준 서울정치부장

유광준 서울정치부장
유광준 서울정치부장

지난 2010년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발간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버텨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이었다.

저자의 위로와 격려는 수많은 청춘들의 마음을 울렸다. 책이 나온 이 후 34주 연속 베스트셀러(교보문고 기준)를 기록했다. 한국을 넘어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이 어느 순간부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탄(指彈)의 대상이 됐다.

복잡다단한 우리 사회의 이해관계 속에서 청년들이 자기 몫을 주장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구체적으로 이 문구가 힘들고, 서럽고, 억울한 우리네 청춘의 암담한 처지를 당연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플 땐 왜 아픈지 알고 왜 아파야 하냐고 묻는 게 청춘이지', '아프니까 청춘이면 병원비는 누가 내?',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 등의 반발이 쏟아진다.

얼마 전 대기업 인사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동창을 만났을 때 들은 얘기다.

요즘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도입 검토 단계에서는 '신원 비공개'(블라인드) 면접 시행여부를 두고 각 기업에서 격론이 있었다고 한다.

'응시자가 회사가 원하는 인재 상(像)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려면 기본적인 신상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다만 실무책임자급을 중심으로 '공정의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시행을 확대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이에 힘이 실렸다.

그런데 정작 입사시험 지원자들이 신원 비공개 면접 시행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들은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학점, 자격증, 편입, 인턴경력, 어학연수 등 얼마나 힘들게 이른바 '스펙'을 쌓았는데 이제 와서 비공개냐'면서 "우리의 노력은 어디서 인정받느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례를 되바라짐이나 치기(稚氣)로 치부하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 '꼰대'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들'만 남는다. 두 집단의 반목은 우리 사회의 진전(進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이다.

196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청춘을 보낸 1980년대 우리나라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대였다. '올해 전국에 공장이 100개였다면 내년에는 109개가 되던 시절'이다. 1965년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05달러 정도였다.

반면 1990년대생들이 20대였던 2010년대 국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3%다. 1995년 1인당 국민소득은 1만1천820달러였다.

두 세대의 생각과 가치관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같은 시대를 살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삶을 살아내는 해법도 다른 것이 당연하다.

'한강의 기적'은 단기간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고 경제적 번영은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면서 '그림자'도 양산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걱정했던 아노미(anomie) 현상이 완연한 대한민국이다.

아노미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기존의 규범이 약화·붕괴하거나 새로 정립되지 않아, 공통의 가치 기준이 상실된 '무규범 상태'를 뜻한다.

그래도 내리사랑이라고 하니, '라떼'('과거 나 때는 말이야'의 줄임 표현)를 외치기보다 '청년인지 감수성'을 높여보자.

'10년 후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월급을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젊은이들에게 어설픈 '훈계질'을 하지 않는 게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