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효과' 예전 같지 않네…외신, 韓 증시 잇단 경고

입력 2026-08-03 10: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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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AI 열풍 거품"…한국 증시에 경고 신호
블룸버그 "개미들 국장 떠난다"…李 증시 정책도 도마
증권가 "AI 펀더멘털 견조…변동성은 당분간 지속"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을 등에 업고 국내 증시를 끌어올렸던 이른바 '젠슨 황 효과'가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엔비디아의 대규모 투자 계획이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 더 이상 국내 증시를 끌어올리는 재료로 작용하지 못하면서 해외 주요 외신들도 한국 증시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3일 외신 등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FT),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최근 한국 증시를 집중 조명하며 AI 랠리의 지속 가능성과 국내 증시 구조에 대한 분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들은 공통으로 AI 산업의 성장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증시가 AI 기대감과 투기성 자금이 결합하면서 가장 먼저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은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놨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9일 '한국 증시 호황이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을 "국가 자본주의와 시장 투기가 결합한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표현했다. AI 반도체 호황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 개인투자자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맞물리며 증시가 과열됐고, 최근 급락은 그 후폭풍이라는 분석이다.

매체는 특히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우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끌어내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 증시가 앞으로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전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젠슨 황 효과'에 대한 시각 변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황 CEO의 발언이나 엔비디아의 투자 발표는 국내 AI·반도체 관련주를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호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엔비디아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검토하고 황 CEO가 한국을 찾아 SK그룹과 대규모 협력 구상을 공개했음에도 시장은 이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황 CEO가 AI 생태계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하며 시장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는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처럼 거품을 키우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CEO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의 기대도 함께 높아지고, 결국 거품이 꺼질 경우 충격 역시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디언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가디언은 "엔비디아가 사실상 AI 경제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AI 산업이 특정 기업의 투자 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 자체가 불안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두 달여 간 국내 증시는 글로벌 주요 시장 가운데서도 손꼽힐 정도의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특히 코스피는 7월 한 달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의 월간 하락률을 기록했고, 하루 만에 10% 안팎 급락하거나 17% 가까이 급등하는 등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AI 반도체 랠리를 주도했던 대형주가 급락했고, 개인투자자들의 반대매매와 차익실현 물량이 쏟아지면서 시장 불안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이에 블룸버그는 한국 개인투자자의 투자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춘 분석을 내놨다. 블룸버그는 지난 2일(한국시간) '코스피 폭락에 무너진 개미들, LEE(이재명 대통령)를 비난하며 다시는 안 산다고 다짐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급락장을 겪은 개인투자자들이 정부의 증시 정책에 실망감을 드러내며 시장을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오랫동안 공격적인 투자 성향으로 유명했지만, 7월 코스피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월간 낙폭을 기록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말 코스피가 하루 만에 18% 가까이 반등했음에도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역대 최대 규모의 순매도에 나서며 차익 실현과 손실 회복을 위한 매도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코스피 9000 시대'를 제시하는 등 증시 활성화를 강조해 온 점도 함께 언급했다. 그러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이후 투기성 자금이 대거 유입됐고, 급락 과정에서는 반대매매가 쏟아지면서 시장 변동성을 오히려 키웠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신규 상품 상장을 중단하고 리스크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놨지만, 시장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주식시장에는 다시 투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30대 개인투자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이 같은 반응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 전반으로 확산, 정부의 증시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글로벌 시장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국 반도체 기업의 AI 경쟁력과 산업의 장기 성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 번 꺾인 투자심리와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주가가 이전 고점을 회복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국내 증시 급락은 단일 요인보다 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장 기대를 밑돈 SK하이닉스 실적을 비롯해 중국 메모리 업체의 기술 추격, 메모리 공급 확대 우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규제를 앞둔 차익실현 매물이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과거처럼 엔비디아 관련 뉴스만으로 국내 반도체주가 급등하는 국면은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의 관심이 AI 기대감보다 메모리 업황의 정점 논란과 실적 지속 가능성, 중국 경쟁사의 추격 등 펀더멘털로 이동하면서 '젠슨 황 효과'가 예전만큼 강력한 주가 촉매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AI 투자가 과도한지 가늠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 공실률과 그래픽처리장치(GPU) 임대비용에는 이상이 없다"라며 "주요국 금리 인상 기조는 이어지나, 빅테크 기업들의 매출 자체는 견고하다"라고 설명했다.

허 연구원은 "그러나 수익성이 동반되지 않는 무리한 투자는 주춤할 것"이라며 "더 중요한 문제는 오라클, 코어위브, 엔비디아 등에서 나타난 자금조달 구조인데 빅테크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커질수록 AI 인프라 투자 속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한 "국내 증시 파티는 끝난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라며 "관건은 이익 확장의 연속성이고, 다음 분기 실적시즌(9~10월)을 통해 기업이익 증가 속도가 둔화되더라도, 꾸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때가 재평가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 연구원은 "복병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기대가 주변국보다 매우 높다는 점"이라며 "이달 SK하이닉스 ADR 자금 유입 등으로 원화는 안정될 것으로 보이나, 증시 회복 속도는 불규칙적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