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사람이 쓴 것인가?"
생성형 AI가 등장한 뒤 문학상은 새로운 질문 앞에 섰다. 문화부로 자리를 옮긴 지난 1년 동안 신춘문예와 매일 시니어문학상을 세 차례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이기도 하다. 생성형 AI는 몇 초 만에 시를 쓰고 소설을 완성한다. 문장의 구성 능력만 놓고 보면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문학상은 앞으로 무엇을 심사해야 할까. 더 나아가 문학상 자체가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문학계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문인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백일장처럼 응모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글을 쓰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오갔다. 웃으며 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AI 시대를 맞은 문학계의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올해 매일 시니어 문학상 공고에 처음으로 AI 활용을 금지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AI를 활용한 작품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적발될 경우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내용도 함께 명시했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은 달랐다. AI 사용 여부를 완벽하게 가려낼 방법은 아직 없다. AI 판별 프로그램도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한다. 결국 당선자가 결정된 뒤 "AI를 사용하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절차였다. 문학상이 AI를 경계한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심사는 참가자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니어 문학상 당선자 선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다. "AI요? 그런 건 쓸 줄도 몰라요." 여러 시니어 당선자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 남았다. 흥미로운 것은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세대가 아니라, 가장 AI와 거리가 먼 세대가 문학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으니 그 말의 의미가 달리 다가왔다.
원고에는 병마를 견딘 시간도 있었고, 한평생 함께한 배우자를 향한 고마움도 있었다. 자식을 키우며 삼킨 눈물도, 은퇴 뒤 비로소 자신을 돌아본 기록도 있었다. 문장이 다소 거칠고 표현이 세련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었다. AI는 문학작품을 학습해 그럴듯한 비유와 표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시간을 학습할 수는 없다. 상실을 견디고, 가족을 돌보고, 생업을 버티며 축적된 삶의 무게까지 생성할 수는 없다.
AI 기술은 앞으로 더 정교해질 것이다. AI 판별 프로그램도 완벽할 수 없다. 결국 문학상이 AI와 속도 경쟁을 벌이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문학상은 'AI를 얼마나 잘 걸러내느냐'가 아니라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더 발견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검출 기술은 AI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결국 제도가 의심을 키우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심사의 철학을 바꾸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기술을 막는 데 집중하는 순간 문학상은 AI를 뒤쫓는 제도가 된다. 결국 문학상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뽑는 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언어가 되는 순간을 발견하는 자리라는 점이다. AI가 문학을 넘보는 시대일수록 관념화되거나 쉽게 데이터화할 수 없는 개개인의 고유한 서사가 더 귀한 아우라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문학상이 주시하고 응원해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