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월드컵 돌풍 카보 베르데, 대항해 식민시대 영역 기준점

입력 2026-07-05 13: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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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 베르데(Cabo Verde·포르투칼어·녹색 곶). 2026 월드컵 이전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 섬나라 카보 베르데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인구 50만 명 소국이니 말이다. 아프리카 예선에서 앙골라(1975년 포르투갈에서 함께 독립), 강호 카메룬을 물리쳐 돌풍을 알렸다. 40살 고령(?) 골키퍼가 이끄는 카보 베르데는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강호 스페인과 0대 0 무승부 기염을 토하며 한국도 탈락한 예선을 넘었다. 비록 32강전에서 메시의 아르헨티나에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3대 2로 분루를 삼켰지만, 지구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카보 베르데가 뜻하지 않게 대항해 기준점이 된 식민시대 역사를 살펴본다.

아프리카인 초상. 1530년. 얀 얀스 모스타에르트.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아프리카인 초상. 1530년. 얀 얀스 모스타에르트.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프리카인 초상' 그림

풍차와 운하, 예술의 나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으로 가보자. 북부 르네상스 네덜란드 화파 얀 얀스 모스타에르트(1475~1553)의 작품 '아프리카인 초상'(1525~1530년)과 '아메리카 정복 풍경'(1535년)이 맞아준다. '아프리카인 초상'은 미술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흑인 초상화다. 흰색 속옷 위 검은 벨벳 의상에 금색 배지를 단 붉은 모자가 검은 피부와 어울려 화려한 색 대비 속 조화를 빚어낸다. '아메리카 정복 풍경'은 스페인 코르테스가 1521년 멕시코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고, 이어 피사로가 1533년 남아메리카 잉카제국을 정복한 무렵 그림이다. 화면 우상단의 바다(대서양), 험준한 산, 마을, 스페인군, 원주민 생활까지 구전과 상상으로 화폭에 가득 채웠다. 대항해 식민지 시대 화가의 시선이 세계를 향하던 시기 희귀작품이라는 미술사적 의미를 갖는다.

아메리카 정복 풍경. 1535년. 얀 얀스 모스타에르트.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아메리카 정복 풍경. 1535년. 얀 얀스 모스타에르트.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대항해 식민시대 부의 상징 '벨렝 타워'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대서양에 붙은 타구스강 북단으로 가보자. 벨렝 타워(베들레햄 탑)가 고색창연한 바다 요새의 위용을 뽐낸다. 포르투갈 마누엘 1세 때 1520년 완공된 마누엘 양식의 대표작이라는 건축사적 의의를 넘는다. 포르투갈이 1498년 인도 항로 개척, 1505년 초대 인도 총독 파견, 1511년 말라카 해협 정복, 1512년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 진출에 이어 향료를 유럽으로 들여오면서 떼돈을 번 시점에 세웠다. 대항해 식민시대 부와 번영을 상징하는 금자탑이다. 건물 외벽 코뿔소 조각은 1515년 포르투갈에 온 인도 코뿔소를 기념한다.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2세 무덤. 1517년 조성. 그라나다 스페인 왕실 묘지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2세 무덤. 1517년 조성. 그라나다 스페인 왕실 묘지

◆대항해 식민시대 선구자 상징 '발견 기념비'

벨렝 타워에서 동쪽으로 15분여 걸으면 '발견기념비'에 이른다. 1960년 52m 높이로 세웠다. 15~16세기 포르투갈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카라벨'(Caravel)은 선박의 뱃머리(船首) 모양을 본떴다. 원양 항해용으로 만든 대형 '나우'(Nau·카락·Carrack)선과 달리 규모가 작다. 뱃머리 맨 앞에 포르투갈 대항해의 선구자 엔히케 왕자가 카라벨 모형을 들고 서 있고, 그 뒤로 1482년 앙골라에 상륙한 디오구 캉, 1488년 남아프리카 희망봉에 닿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1498년 인도에 도착한 바스코 다가마, 1500년 브라질을 발견한 카브랄, 1522년 세계 일주를 성공시킨 마젤란, 지도 제작자, 과학자 등 33명의 포르투갈 항해 식민 선구자를 조각했다. 이 기념비를 1960년에 완공한 것은 한 인물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누구일까?

사그레스 학파 알레고리. 1970년. 세베루 포르텔라 주니오르. 리스본 해양 박물관
사그레스 학파 알레고리. 1970년. 세베루 포르텔라 주니오르. 리스본 해양 박물관

◆1415년 포르투갈 해외 진출 선구

기념비 근처 포르투갈 해양 박물관으로 가보자. '사그레스 학파 알레고리'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세베루 포르텔라 주니오르가 1970년 그렸다. 15세기 포르투갈 귀족들이 착용하던 샤프롱(Chaperon) 또는 보네(Bonnet) 계열 검은색 모자를 쓰고, 지도를 든 인물이 엔히케 왕자다. 주변에 탐험가, 지도 제작자, 학자들이 대항해를 연구, 토론하는 모습을 담았다. 엔히케 왕자(어머니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 손녀 필리파)가 아버지 주앙 1세로부터 1443년 하사받은 영지 사그레스성의 모습을 상상해 그린 사그레스 성 알레고리(寓意·allegory·실체가 없는 추상 개념을 사람으로 의인화해 표현하는 기법)다. 엔히케는 1415년 아버지 주앙 1세와 함께 바다 건너 북아프리카 세우타를 점령한 뒤, 1460년 죽을 때까지 포르투갈의 대항해를 주도했다.

콜럼버스 무덤. 1902년 완성. 세비야 대성당.
콜럼버스 무덤. 1902년 완성. 세비야 대성당.

◆1456년 포르투갈 카보 베르데 노예 무역 거점

엔히케 주도 아래 포르투갈 선단은 1419년 마데이라 제도, 1427년 아조레스 제도, 1434년 보자도르곶(카나리아 제도), 1442년 리오도 오우로, 1456년 세네갈에 이어 월드컵 돌풍의 카보베르데에 도착한다. 카보 베르데는 육지가 아니라 섬이지만,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맞은편 세네갈 반도의 녹색 곶(카보 베르데) 이름을 따, 카보 베르데라고 이름 붙였다. 1460년 엔히케 왕자가 죽은 뒤에도 1482년 앙골라, 1488년 희망봉 도달한다. 포르투갈은 이후 카보 베르데를 중간 거점으로 앙골라에서 많은 흑인 노예를 잡아 부를 쌓으며 최고의 수익 상품인 향료 직무역(지중해 베네치아, 제노바를 통한 간접무역 대신)을 위해 인도 항로 개척에 매진한다.

발견 기념비. 1960년 세움. 지구촌 최초 대항해 식민 국가 포르투갈의 위상을 15세기 해양 탐사 선박 카라벨 모양을 본뜬 기념비다. 리스본
발견 기념비. 1960년 세움. 지구촌 최초 대항해 식민 국가 포르투갈의 위상을 15세기 해양 탐사 선박 카라벨 모양을 본뜬 기념비다. 리스본

◆1478년 이사벨라 여왕 스페인 왕국 탄생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1896년 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트레몰로 기법 기타 선율로 들으며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로 가보자. 이슬람 건축예술의 금자탑 알함브라 궁전 밑 시가지 대성당 왕실 무덤에 1492년 1월 이슬람 세력을 내쫓고 기독교 레콩키스타(국토 회복)를 완성한 이사벨라 여왕 석관이 자리한다. 옆에는 1469년 결혼 이후 해로한 남편(1479년 아라곤 왕국 왕이 되면서 이사벨라의 카스티야 왕국과 통합 스페인 왕국 설립) 페르난도 2세 관도 놓였다. 스페인 르네상스 장례 조각의 걸작으로 손색없다. 통합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 부부는 1492년 8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항해가 콜럼버스의 인도 항해를 지원한다.

◆1492년 콜럼버스 아메리카 진출

그라나다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여 달려 세비야에 이른다. 12세기 이슬람 시대 모스크 미나렛(히랄다 탑·높이 104m)을 보며 지구촌에서 가장 큰 내부 체적을 가진 교회 세비야 대성당으로 들어가면 1902년 만든 콜럼버스관을 마주한다. 스페인 왕국 4개 지역(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을 의인화한 인물이 운구하는 모양이다.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한 그의 시신은 1542년 도미니카, 1795년 쿠바 아바나로 이장됐다. 이후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 전쟁에서 패해 쿠바를 상실하면서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왔다. 1492년 콜럼버스가 이사벨라 여왕 후원으로 인도로 가다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포르투갈과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토르데시야스 조약, 지구촌 영역 낳아

두 나라가 독실한 카톨릭 국가임을 감안해 교황 알렉산더 6세가 나섰다. 1493년 칙서를 내 두 나라의 해양 개척 영역을 조정해 줬다. 기준점이 바로 카보 베르데다. 카보 베르데 서쪽 100리그(600km) 지점 서쪽은 스페인, 동쪽은 포르투갈이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해양 개척에 앞서 있던 포르투갈이 불만을 품고, 1494년 6월 스페인과 직접 토르데시아스 조약을 맺었다.

경계선을 카보 베르데 서쪽 370리그(2천 km)로 옮겼다. 이 조약 덕에 포르투갈은 콜럼버스가 찾은 아메리카로 갈 수 있었고, 6년 뒤 1500년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했다. 오늘날 영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영어의 미국, 네덜란드어의 수리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아메리카 국가는 스페인어를 쓴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식민지여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월드컵 돌풍 카보 베르데를 기준으로 삼은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 결과물이다. 조약의 주역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오는 7일 화요일 새벽 4시 숙명의 월드컵 16강전을 치르고 한 팀은 보따리를 싼다. 묘하게도 포르투갈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축구와 월드컵은 그래서 지구촌 축제로 손색없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