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길을 잃은 시대의 '아름다움'

입력 2026-06-30 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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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살다 보면 우리는 수단의 묘미에 빠져 목적을 상실하곤 한다. 더 좋은 수단을 차지하려 경쟁하느라 본질을 잃어버리는 본말이 전도된 삶이다. 목적이 삶의 나침반이라면 수단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착지에 빨리 가기 위해 더 좋은 수단을 탐하다가 정작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다. 수단에 눈이 멀면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향한 수단은 상황과 한계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 몸집보다 거대한 소똥을 굴리는 쇠똥구리처럼, 우리도 각자의 운명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올바른 목적지를 향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을 담보하지 않으며, 좋은 수단을 쥐고도 갈 곳을 모른다면 무명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도 시작도 없는 아득한 미로를 닮았다. 갔던 길을 헤매고 새 길을 찾다가 막히는 망각을 반복한다. 인간의 제한된 눈으로는 넓은 미로를 조망할 수 없다. 과학은 이성으로 미로의 지도를 밝히고, 통찰은 철학으로 삶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세상은 여전히 깊은 미궁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름다움'이란 말의 본질을 되짚어보게 된다. 사전 속 '아름'은 두 팔을 펼쳐 모은 둘레를 뜻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세상의 소란 속에서 '가장 나다운 것'을 찾아내 내 두 팔로 온전히 품어 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의 정체성을 그려내는 미술가에게 이보다 중요한 본질은 없다. 내 안의 정체성을 발견할 때 비로소 삶과 예술은 일치한다. 예술가의 길은 내면의 참된 길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삶과 다를 바 없다.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의 가사처럼 인생은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 건진 삶이다. 옷 한 벌은 현세를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지만, 인간은 실체 없는 욕망의 덩어리가 되어 평생을 올인한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면면은 속도가 아니라 온전한 체험 속에서만 드러난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면 빨리 갈 순 있으나 그 위에서는 대지 위의 삶을 알 수 없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삶에서 고통은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게 하지만 맹목적인 쾌락은 정신을 흐트러뜨릴 뿐이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며, 스스로 유배시키면 그것은 유배가 아니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자발적으로 고독 속에 나를 가둘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 성찰과 자유를 얻는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삶이 주는 명료함을 회복해야 한다. 가끔은 삶의 걸음을 멈추고 자발적인 가난과 유배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자. 내 팔을 벌려 나만의 '아름'을 품어 안는 고독의 끝에서 미로를 벗어날 진짜 길을 발견하게 되길 청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