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창조는 복제되지 않는다

입력 2026-06-28 13: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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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최근 대구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가 논란이 됐다. 진품으로 알려졌던 작품 상당수가 복제품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는 앞으로 더 확인돼야 하겠지만, 이번 일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진품'을 보고 싶어 하는 걸까.

복제품은 원작을 닮기 위해 만들어진다. 색과 크기, 질감까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재현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진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다.

아마 사람들은 그림이 아니라, 그 작품이 태어난 순간을 만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카소가 빈 캔버스 앞에서 수없이 망설이고, 지우고, 다시 그리며 마침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 오랜 시간과 치열한 고민, 그리고 세상에 없던 것을 처음 만들어 낸 창조의 순간은 아무리 정교한 복제품이라도 담아낼 수 없다. 진품을 아무리 똑같이 복제해도 예술가가 그것을 창조하던 순간의 혼은 담을 수 없다.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이어졌다. 연주자는 같은 악보를 연주해도 모두 다른 음악을 만든다. 그 이유는 음표가 아니라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연주자는 자신의 해석을 찾기 위해 수개월 동안 악보와 씨름한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에게 남는 것은 한 시간 남짓의 연주일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수없이 반복된 연습과 실패, 보이지 않는 사유의 시간이 쌓여 있다.

그래서 연주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창조다. 연주자는 작곡가처럼 새로운 작품을 쓰지는 않지만, 작곡가가 남긴 악보를 오늘의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AI는 바흐의 화성으로 곡을 만들고, 피카소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며, 유명 연주자의 연주 스타일까지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재현한다. 언젠가는 인간의 결과물과 쉽게 구별하기 어려운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조합할 수는 있어도, 한 인간이 삶 속에서 겪은 기쁨과 상실, 실패와 용기, 그리고 끝없는 질문 끝에 얻어낸 깨달음까지 경험할 수는 없다. 예술은 결과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시간과 선택, 창조의 과정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의 예술은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를 더욱 깊이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진품 앞에서 감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눈앞의 물감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이 수없이 실패하고 고민하며 끝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낸 시간과 용기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닮을 수는 있다. 그러나 창조의 순간만큼은 AI도 그 어떤 복제품도 대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