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영만] 전장을 달린 영웅, 군마 레클리스를 기억하며

입력 2026-06-28 14:56:01 수정 2026-06-28 15: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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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만 한국자유총연맹 대구시지부 고문·매일신문 정치 아카데미 2기 회장

정영만 한국자유총연맹 대구시지부 고문 매일신문 정치 아카데미 2기 회장
정영만 한국자유총연맹 대구시지부 고문 매일신문 정치 아카데미 2기 회장

올해로 6·25전쟁 발발 76주년을 맞는다. 해마다 6월이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이름을 떠올린다. 그러나 호국(護國)의 대열에 사람들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하며 끝까지 전장을 지킨 한 마리 말도 있었다.

1953년 3월, 경기도 연천의 고지는 포연으로 뒤덮여 있었다. 포탄이 쏟아지고 총성이 산허리를 갈랐다. 사람조차 몸을 낮추고 숨을 곳을 찾던 아수라장 속에서 한 마리 말이 탄약을 등에 싣고 산길을 올랐다. 군마 레클리스(Reckless)다.

레클리스의 원래 이름은 '아침해'였다. 1952년 10월 미 해병 제1사단 제5연대 무반동포 소대의 에릭 페더슨 중위가 소년 마주(馬主) 김흑문에게서 250달러에 사들이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소년은 지뢰로 다리를 잃은 누나의 의족을 마련해야 했다. 전쟁의 참화(慘禍)가 평범한 삶을 무너뜨린 사연이다. 그렇게 전선으로 보내진 암말은 미 해병대 역사에 남을 영웅이 된다.

처음 맡은 임무는 탄약과 보급품 운반이었다. 그러나 장병들과 생활하며 포성이 울리면 몸을 낮추고 한 번 지나간 길을 기억할 만큼 영리하고 용감한 전우로 성장했다. 연천의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는 하루 51차례 탄약 보급소와 포진지를 오갔다. 대부분 홀로 달리며 약 5톤의 탄약을 운반했고 내려올 때는 부상병을 태웠다. 두 차례 파편에 다치고도 다시 포화 속으로 향했다.

말은 전쟁의 이유도 위험의 크기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레클리스는 자신을 기다리는 전우들이 있음을 아는 듯했다. 그 작은 등 위에는 탄약과 부상병뿐 아니라 장병들의 희망도 함께 실려 있었을 것이다.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의 전공을 인정해 상병과 병장으로 진급시켰고, 1959년에는 동물로서는 미 해병대 역사상 최초로 우리 군의 중사에 가까운 'Staff Sergeant' 계급에 오르는 영예를 안겼다. 훈장과 표창도 뒤따랐다. 이는 레클리스가 전쟁 장비가 아니라 생사를 함께한 전우였음을 뜻한다.

오늘날 연천에는 레클리스를 기리는 동상과 거리가 조성돼 있고, 미국 국립해병대박물관과 캠프 펜들턴 등에도 동상과 기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었고 함께 싸운 부대는 미군이었지만, 그가 지켜낸 것은 국적을 넘어선 생명과 자유였다. 레클리스는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을 증언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6월은 호국의 뜻을 되새기는 달이다. 진정한 영웅이란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외면하지 않는 존재인지 모른다. 포화 속 산길을 51차례 오르내린 말이 남긴 교훈도 바로 그것이다.

76년 전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과 유엔군 참전 용사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킨 레클리스의 헌신을 기억하자. 오늘의 평화가 값비싼 희생으로 지켜졌음을 후대에 전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해야 한다.

연천의 고지를 묵묵히 달렸던 레클리스의 발굽 소리가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울리기를 바란다. 그 소리는 평화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스스로 지켜낼 때 비로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말없이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