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상장' 규제에 지주사 재평가 기대
자회사 IPO 대신 지분 매입 사례 확산
일반주주 보호 기준 놓고 막판 조율
중복상장 규제가 본격 추진되면서 지주회사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 증시에서는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구조가 주주 간 이해상충을 유발하고 기업가치를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금융당국이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면서 시장에서는 지주회사 할인 요인 완화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3월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의 일환으로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물적분할 자회사뿐 아니라 공정거래법상 지배관계에 있는 계열사 상장까지 심사 대상으로 포함하고, 일반주주 보호 장치를 마련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상장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국내 증시에서는 알짜 사업부를 떼어내 별도 상장하는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 가치가 훼손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자회사 가치가 별도 시장에서 평가받으면서 모회사 기업가치가 희석되는 이른바 '더블카운팅' 문제가 대표적이다. 금융당국 역시 이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주주 가치 훼손 논란의 원인은 물적분할 자체보다 모자기업 동시상장에 있다"며 "모회사와 자회사가 함께 상장하는 구조에서 기업가치 훼손 우려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중복상장 규제가 정착될 경우 주주 간 이해상충 우려가 줄어들면서 지주회사 할인 요인도 완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자회사 가치 비중이 높은 지주회사일수록 제도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HD현대로보틱스다. HD현대는 로봇 사업 확대를 위해 HD현대로보틱스 상장을 추진해왔지만 중복상장 규제가 변수로 떠오르면서 관련 일정을 재검토하고 있다. 로봇 사업은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가 필요한 만큼 IPO는 주요 자금조달 수단으로 꼽혀왔다.
SK에코플랜트는 상장 대신 투자자 정리에 나섰다. SK와 SK에코플랜트는 지난 4월 각각 이사회를 열고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보통주와 전환우선주(CPS)를 약 1조500억원 규모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SK의 SK에코플랜트 지분율은 기존 66.7%에서 71.2%로 높아졌다.
LS 역시 LS이브이코리아와 LS에코첨단소재 지분을 FI로부터 되사들이며 대응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중복상장 규제 도입을 앞두고 기업들이 자회사 IPO 대신 지분 정리와 지배력 강화에 나서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자회사 IPO는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 신사업 확대를 위한 주요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해왔다. 중복상장 규제가 정착될 경우 기업들은 IPO 대신 모회사 지원 확대나 자체 현금흐름 활용 등 새로운 자금조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세부 가이드라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중복상장 예외 허용 기준과 일반주주 보호 방안 등을 놓고 막판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이달 초 공개될 것으로 예상됐던 가이드라인 발표가 늦어지면서 일반주주 동의 방식과 시행 시점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과 일반주주 다수결(MoM)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복상장 규제가 자회사 상장을 원칙적 금지로 전환하면서 예외 허용의 핵심 요건으로 모회사 일반주주의 실질적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주회사의 역할과 재무 안정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