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서는 이맘때(임신 37주) 몸무게 몇 kg이었어?"
출산을 앞둔 회사 선배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분명 내 배 속에도 태서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웃으며 말했다. "저 지난달 태서 몸무게도 기억 안 나요. 뱃속에 있을 때가 기억날 리가요."
선배뿐만 아니다. 육아 후배들이 "몇 개월에 걸었어요?", "통잠은 언제 잤어요?", "18개월 진짜 힘들어요?"라고 물어도 늘 비슷하다. "글쎄…."
분명 내가 키웠다. 하루 24시간 붙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지나고 나니 기억이 흐릿하다. 물론 태서는 비교적 수월한 아이였다. 통잠도 빨랐고, 지금도 잠꾸러기이며 밥도 (항상) 잘 먹고 이앓이도 없었다.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다는 '마의 18개월'도 우리 집에는 크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몇 번을 했는지 셀 수도 없는 수유.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한 안아주기. 끝이 보이지 않던 기저귀 갈이. 밤새 열이 올라 체온계를 들고 안절부절 못하던 순간들. 이유도 모른 채 함께 울었던 새벽도 있었다. 분명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잊힌다.
어쩌면 망각은 부모에게 주어진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수많은 밤샘과 걱정, 눈물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아이를 향한 애정만 남는다.
오늘도 나는 망각할 것이다. 태서가 참외를 달라더니 갑자기 사과를 달라고 하고, 또 금세 블루베리를 달라고 떼를 썼던 일을. 그리고 함께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쿨쿨 잠이든 태서를 보고 웃음 짓던 일을. 아마 전자는 잊고 후자만 기억하게 되겠지.
어쩌면 그래서 부모들이 둘째를 낳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육아를 망각하는 순간 둘째가 생긴다"고. 다른 부모들보다 훨씬 심한 망각증 환자인 나로서는 꽤 위험한 이야기다. 괜히 불안해진 나는 오늘도 혼자 조용히 읊조려본다. "조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