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의 두발 산책] 소금·고등어·피아노까지 실려 왔다… 사문진에 남은 낙동강 역사

입력 2026-07-03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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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모양의 조형물 뒤로 사문진 나루터에서 탈 수 있는 유람선 승차장이 보이는 모습. 정두나 기자.
피아노 모양의 조형물 뒤로 사문진 나루터에서 탈 수 있는 유람선 승차장이 보이는 모습. 정두나 기자.

오늘날 대구를 찾는 수많은 이들은 기차역에 내리거나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목적지로 향한다. 저마다의 손에는 선물과 짐이 한가득 들려 있고, 멀리 있는 이에게 물건만 따로 보낼 땐 택배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됐다.

철도와 도로가 없던 옛날에는 그 많은 물자를 어떻게 실어 날랐을까. 답은 낙동강 물길에 있다. 당시에는 소금과 온갖 짐을 가득 실은 장사배들이 강줄기를 따라 유유히 흐르다 '사문진 나루터'에 닻을 내렸다. 이곳을 통해 들어온 풍부한 물자는 대구를 넘어 영남 지역 전체를 먹여 살렸다.

◆ 낙동강이 살린 영남

나루터 일대인 '화원동산'의 역사는 신라 시대부터 시작된다. 당대 아름다운 휴양지로서도 이름을 날려서다. 신라 경덕왕은 화원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홉 차례나 이곳에 들렀다. 그 이름을 따 과거에는 '구례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는 구라리로 불린다. 신분이 높은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무덤인 고분 역시 다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문진은 영남 교통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된다. 사문진 나루터로 들어온 짐의 5분의 2는 대구 시내의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나머지는 다시 낙동강을 타고 가 부산 등으로 옮겨졌다. 당시에는 까마득하게 멀던 고령군 다산면의 농산물도 대구에서 즐길 수 있었다.

조정에서도 그 중요함을 알았다. 조선시대 1446년부터 약 40년 간은 무역 창고지 '화원창'으로 불렸다. 성종 3년에는 대일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농산물뿐만 아니라 공예품도 드나들었다. 쌀과 콩, 쇠가죽과 소금, 석유, 성냥이 사문진 나루터에 내렸고, 성냥과 무명, 인견, 면직물과 약재도 함께 들어왔다. 내륙에서는 보기 어려운 미역이나 다시마, 고등어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나루터였다.

하얀색 피아노 분수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다. 정두나 기자.
하얀색 피아노 분수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다. 정두나 기자.

◆ 사문진에 내린 '귀신통'

이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피아노다. 사문진 나루터는 한국 최초의 피아노를 실어 나른 곳이다. 1900년 선교사인 사보담 부부는 미국에서 보낸 피아노를 부산 낙동강에서 받은 뒤, 사문진으로 날랐다.

피아노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20명의 인부가 동원됐다. 이들은 깔개와 밧줄, 망치로 받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피아노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받침대의 튀어나온 이음새 부분을 너나 할 거 없이 나눠 든 뒤, 대구까지 걸어서 옮겼다.

처음 피아노를 마주한 인부들은 기이하다며 수군거렸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흔들릴 때마다 '쨍' 하는 악기 소리가 울려 퍼져서다.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이 스스로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고, 인부들은 '귀신통'이라고 불렀다. 쉬는 시간이 찾아오자, 한 인부가 호기심에 건반을 눌러봤다가 큰 소리가 나자 아연실색하며 도망친 일도 있었다.

들어온 피아노는 전도와 교육에 활용됐다. 선교사 부부가 박자에 맞춰 찬송가의 반주를 연주하면, 대구 시민들은 노래를 부르며 신앙심을 다졌다.

달성군이 지난 2013년부터 주막촌, 유람선 선착장 등을 조성하고 관광사업을 진행해 탄생시킨 사문진나루터. 달성군 제공.
달성군이 지난 2013년부터 주막촌, 유람선 선착장 등을 조성하고 관광사업을 진행해 탄생시킨 사문진나루터. 달성군 제공.

◆ 다시 흐르는 사문진

기나긴 역사가 이어지다가, 발길이 뜸해진 건 기차가 개통하면서부터다. 한동안 계속 외면받다가, 최근 깊은 역사가 재발굴되면서 관광지로 떠오르게 됐다. 사문진 곳곳에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조형물이 세워졌다.

이제는 사라진 나룻배 대신 유람선이 마련됐다. 운행 시간에 맞춰 표를 구매하면 누구나 배를 타고 낙동강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유람선 탑승지 옆에 마련된 광장에는 피아노를 형상화한 분수대를 마주할 수 있다. 피아노 아래로 떨어지는 시원한 물은 검은색과 흰색 건반을 따라 흘러가며 더위를 식힌다.

나루터와 피아노에 얽힌 이야기는 '화원역사문화체험관'에 고스란히 남았다. 실제로 시민들이 이고 지며 옮겼던 피아노 역시 온전히 남아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날 무더위에 화원동산과 나루터를 구경하느라 지쳤을 이들이 여기저기에 앉아 역사를 둘러보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나루터 한쪽에 자리한 '사문진 주막촌'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옛 주막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이곳은 저렴하고 맛깔스러운 한식부터 뜨끈한 라면, 시원한 막걸리까지 맛볼 수 있어 나들이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짐을 보관했을 나루터의 평평한 물가는 시민들의 나들이터가 됐다. 이들은 사문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잔디밭에 돗자리를 폈다. 도시락을 싸 온 뒤 나눠 먹거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화투를 치는 이들도 보였다.

세월이 흘러 강을 오가던 장사배는 사라졌지만, 사문진 나루터는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던 귀신통 피아노 소리는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로 재탄생했고, 짐을 툭툭 내려놓던 곳은 평화로운 돗자리 명당이 되었다.

역사 공부와 휴식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장소, 이번 휴일에는 낙동강의 숨은 옛이야기를 찾아 사문진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