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꿈을 묻는다는 것

입력 2026-06-24 13: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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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우 시인·소설가

심강우 시인·소설가
심강우 시인·소설가

꽤 오랫동안 골목이 있는 동네에서 살아서인지 골목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낯선 도시를 방문할 경우 골목부터 찾는 것도 체화된 습성일 터이다.

빈 종이박스를 골목 입구에 내놓고 돌아오다가 한 집 건너에 사는 할머니를 만났다. 인사를 나눈 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내게 할머니는 고마운 분이다. 오래전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섬망 증세로 한겨울에 맨발로 골목을 헤매다가 그 집 대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따로 살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할머니가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 할머니가 어머니를 거두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할머니는 애잔한 눈빛으로 섭생을 당부한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보고 내심 놀랐다. 한 달 전에 비해 더 해쓱해진 것 같았다. 하긴 할머니도 여든을 넘겼다. 돌아가실 즈음의 어머니 연배가 된 것이다.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어머니와 함께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 골목의 잡초를 뽑은 일이며 민들레나 뽀리뱅이를 건사한 일이며 공원에 운동하러 가거나 장보러 간 일, 더러 전을 부쳐 나눠 먹은 일까지. 나는 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입을 통해 어머니를 만나는 셈이었다.

무슨 말끝에 할머니가 말했다. 어머니 꿈을 꾼 적이 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워낙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꿈에서도 매무새가 깨끔한 걸 보면 좋은 곳에 가신 듯허이."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감나무를 올려다봤다. 꿈에서도 매무새가 깨끔했다. 그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잘 익은 감을 꿈꾸듯 바라보던 어머니. 그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꿈이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었다. 할머니가 말한 것과 다른 의미에서의 꿈. 어머니 생전에 나는 어머니께 꿈이 뭔지 물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라고 꿈이 없었겠는가. 가슴이 저렸다.

오늘이 마지막 칼럼이다. 일년간 부족한 글을 진득하게 지켜봐 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떠나면서 남기고 싶은 말은 사랑하는 이에게 가끔 꿈이 뭔지 물어 보라는 것이다. 꿈을 묻는 것과 꿈을 이루는 건 별개의 문제다. 꿈을 묻는 건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 것이고 그것은 공유면적에 나무 한 그루 심는 일이다.

가끔은 그 나무까지 걸어가 보시라. 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각자 품어온 것을 나누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리고 기억하시길. 언젠가 당신이 무척 외로울 때, 그때 당신은 나무가 들려주는 꿈 얘기에 분명 미소 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