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고백과 고해

입력 2026-06-23 11: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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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시간이 흐르면 사과할 일이 줄어들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미안한 사람은 늘어난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나고 나서야 보이기 때문이다. 옳다고 믿었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사진가로 살아오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먼 나라의 고려인과 체르노빌 사람들,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가는 이웃의 삶을 담았다. 좋은 사진을 꿈꾸며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사진보다 사람이 먼저였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을 빼앗겨 상대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적도 있다. 스치는 표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너무 가까이 다가서기도 했다. 사진은 남았지만 관계는 소원해졌다.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시를 준비하고 프로젝트를 끝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늘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 곁에 충분히 머물지 못했다. 연락을 기다렸을 사람에게 답하지 못했고, 함께 나눌 시간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언젠가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후회는 대개 지나간 뒤에 찾아온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모든 결과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선의가 있었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다. 꿈을 말했고 계획을 세웠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다음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말의 무게를 알게 됐다. "미안합니다.", "그때 내가 부족했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라는 짧은 말들.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앞에서는 변명도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했다.

생각해 보면 고백과 고해는 닮은 듯 다른 말이다. 고백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나 고해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놓친 것과 미처 살피지 못한 마음 앞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고백이 말이라면 고해는 침묵에 가깝다. 어느 순간부터 이루지 못한 일보다 놓쳐버린 사람들이 먼저 떠올랐고, 잘한 일보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이 더 오래 남았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은 달라질 수 있다. 후회가 자책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더 깊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이루어낸 것보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