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직이 있는 뇌성마비 환자들에게 보톡스 시술을 하는 날이다. 재활의학과에서 보톡스는 주름을 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직을 줄이기 위한 치료용으로 쓰인다. 주사시술이다 보니 어린 환자가 시술하는 날은 병원이 온통 울음바다가 된다.
오늘 주사를 맞는 7살 현아도 시술 침대에 눕기 전부터 울음이 터졌다. 현아에게 어머님이 얘기하셨다. "현아야, 저번에 맞았을 때 별로 안 아프다고 했잖아. 오늘도 선생님이 안 아프게 놔주실거야. 이 주사 맞으면 현아 손가락도 펴지고 힘도 더 좋아진단다. 엄마는 이 주사가 고마운데" "그렇지만 난 주사가 무섭다고!!"
시술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사맞기 싫다고 한참 떼를 쓰던 현아가 갑자기 옆에 있던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주사 안무서워요?". 뜬금없이 던져진 질문에 고민하던 나의 대답. "사실 선생님도 무서운데 참는 거야. 선생님은 현아도 잘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번에도 잘 맞았잖아"
의외로 이 대답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불고기 피자 한 판을 엄마에게 약속받고 현아는 무사히 시술을 잘 받았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무서워할 게 더 많은 것 같다. 갑자기 뛰는 물가, 떨어지는 집값, 오늘의 매상, 가족의 건강. 오늘 출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 정년 퇴임할 거라 믿었던 직장에서 갑자기 권고사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게 착하게 성실히 산다고 다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이 왜 내게 일어나는지 이해도 납득도 안되는데 매일매일이 뻥뻥 터지는 지뢰밭일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고, 아빠고 어른이다. 내가 불안하면 아이들이 더 불안해하고 내가 무서워하면 아이들은 대성통곡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사실 무섭고 떨리고 자신 없는 데, 안 무서운 척, 자신 있는 척, 든든한 척했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아침,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이었으나 가족들에겐 웃으며 씩씩하게 문을 열고 출근했을 지도 모르겠다.
의사도 그렇다. 불안해하는 보호자의 눈을 보고 있으면 엄마 눈치를 보는 아이 같을 때가 있다. 내 한마디에 보호자들은 울고 웃는다.
유난히 불안해하며 설명하기도 전에 눈물을 터트리는 보호자라도 만날라 치면, 사실은 나도 걱정되지만 짐짓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우는 보호자에게, "어머님, 나중엔 어머니가 제 앞에서 이렇게 울었던 걸 부끄러워할 날이 올 수도 있어요. 얘는 좋아질 거거든요"라고 놀리기도 한다. 이건 내 식의 위로이자 나에게 하는 다짐이다. 나중에 이 어머니가 그때 선생님 앞에서 울었던 제가 정말 부끄럽다고, 정말로 애가 많이 좋아졌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
나는 사실 연약하고, 걱정 많고, 무서움 많은 내향인이지만, 오늘도 의사 가운을 입으며 자신감 넘치고, 확신에 찬, 에너지 많은 외향인으로 변신한다. 그렇게 안 무서운 척, 멋있는 척, 든든한 척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보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사실은 무섭고, 불안하고, 도망치고 싶은, 그러나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상의 어른들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