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엽 전 국토장관 "국가는 배와 같다…방향 잃으면 결국 난파"

입력 2026-06-21 13: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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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은 치수 넘어 국토 품격·국민 복지 높인 프로젝트"
"부동산은 세금보다 공급…정책 연속성이 시장 신뢰 만든다"
"대구경북은 하나의 경제권…행정통합도 경쟁력 관점서 접근해야"
"국가라는 배 방향 잃으면 난파…인재가 국가 경쟁력 결정"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며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며 "정책은 선량한 국민을 편 가르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26.6.19. 이무성 객원 사진기자

약속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했다.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도엽(73)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미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는 기자를 보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건넸다.

"공직 생활 오래 하다 보니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최근 자서전 '국가라는 배 위에서'를 펴낸 그는 지난해부터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을 맡아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경북 의성 옥산면의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태어나 폐결핵을 이겨내고 1978년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건설부와 국토해양부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고속도로와 신도시, 주택정책, 4대강 사업까지 현대 국토정책의 주요 현장을 두루 거쳤다.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국토해양부 1차관을 거쳐 2011년 6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이명박 정부의 2대 국토해양부 장관을 지냈다.

공직을 떠난 지 13년이 지났지만 화법과 기억력은 또렷했다. 그는 대화 내내 메모지 한 장 들여다보지 않고 40여 년 전 건설부 시절 이야기부터 장관 재임기의 정책 결정 과정, 각종 수치까지 막힘없이 꺼냈다. 4대강 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몸을 앞으로 숙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유독 인터뷰 내내 '국가'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그는 "국가는 배와 같다"며 "방향을 잃으면 결국 난파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공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시점에 자서전을 낸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해 건강이 좀 안 좋았다. 그 상황에서 주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글로 정리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내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이야기보다 우리 사회가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점에 갔다가 초·중학생용 교과서와 참고서를 봤는데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발전을 노동자와 농민의 피와 땀의 결과로만 서술하고, 지도자들은 독재자로만 그려놓았더라. 어린이 위인전에도 건국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잘 안 보이는데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은 버젓이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책 제목도 그런 의미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계속 발전의 항로를 가고 있는지, 아니면 회항하고 있는지, 잘못하면 난파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자는 뜻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결국 국가는 사람이 운영한다는 점이다. 방향을 정하는 것도 사람이고 정책을 집행하는 것도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쓰고 어떤 기준으로 인재를 발탁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그런 문제의식도 책에 담았다.

- 책을 보면 국가 운영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겨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가 전체보다 정당이나 선거를 먼저 생각하는 풍조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1980년대까지는 국회의원들이 지역민을 대표해 국정을 살핀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정책을 설명하면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따졌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되는지, 지역구에 도움이 되는지부터 따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라 전체를 보고 판단하기보다 단기 정치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장관 퇴임 때 주성영 당시 의원과 식사하며 우리 사회가 '당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정당 간 승패를 위한 경쟁이 과도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국가 정책은 선거 주기보다 훨씬 긴 시간축에서 바라봐야 한다.

- 장관 시절 가장 큰 국책사업 가운데 하나가 4대강 사업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떻게 평가하나.

▶당시 시대적 상황을 먼저 봐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투자를 신속하게 확대해야 했는데 문제는 바로 집행할 수 있는 사업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도나 공항, 도로 사업은 노선 선정부터 설계, 보상 절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하천 사업은 이미 구간이 정해져 있고 기본 시설도 갖춰져 있어 설계 변경만으로 신속하게 착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하천은 국가 소유다. 그래서 2009년부터 대규모 투자가 가능했다. 그 결과 한국은 금융위기를 비교적 빠르게 극복했다. 당시 미국도 경기부양을 추진했지만 실제 사업 집행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는 준비된 사업이 있었기 때문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찬반 논란은 있다. 그러나 정책을 평가할 때는 현재 시점이 아니라 그 당시 국가가 처한 경제 상황과 정책 목적을 함께 봐야 한다.

-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4대강 사업은 단순한 치수사업이 아니다. 국민이 강을 더 가까이 이용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다. 우리는 평지에서 자연과 가깝게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강변 캠핑장이나 자전거길, 산책 공간을 조성한 것도 그런 이유다.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4대강 사업을 '치수+국토 품격+국민 복지'를 높인 사업으로 평가한다.

사업 전 강바닥에는 온갖 퇴적물이 쌓여 있었다. 준설한 양이 4억5천만㎥로 서울 남산의 9배 정도 된다. 제외지(제방 안쪽 강바닥) 상당 부분이 비닐하우스 등 농경지로 점유돼 있어서 빗물에 비료·축분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어 오염이 심했고, 일반 국민의 접근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사업을 통해 약 2천300만 평, 여의도 면적의 약 23배에 달하는 농경지가 초지로 바뀌었다. 당시 시설채소 농가의 생산 차질을 걱정했는데 농가들이 알아서 제내지 쪽으로 재배지를 옮기면서 가격 파동 없이 넘어갔다.

차관 때 보니 제방 상단 폭을 더 넓혀 나무를 심고 자전거길과 산책길, 휴식 공간을 더욱 확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강변이 하나의 거대한 녹지축이자 국민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칠곡에는 그런 방향으로 조성됐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더 아쉬운 점은 4대강 사업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진 것이다. 관심이 줄어들면 관리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국민이 많이 이용하고 관심을 가지면 자치단체와 정치권도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게 되고, 공간은 더욱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선순환 구조가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 부동산 정책 부서에 오래 계셨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칙은 무엇인가.

▶주택은 우리 삶의 가장 근간이 되는 터전이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더 좋은 위치에서 더 많이 소비할수록 국민의 효용이 늘어난다. 다만 땅이 제한돼 있어 무제한 공급은 어렵다. 그래서 정책의 방향은 가능하면 더 넓은 주거 공간을 더 많은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쪽이어야 한다. 주택은 전후방 연관 효과도 굉장히 커서 경제에도 중요하다. 인구와 소득이 늘면 주택 수요도, 1인당 주거 면적도 계속 늘어나는데 거기에 맞춰 공급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정책의 핵심이다.

- 오랫동안 주택 정책을 다뤄온 입장에서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정부는 세금보다 공급에 더 집중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을 오래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공급은 시간이 걸린다. 정책을 발표한다고 바로 집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착공까지도 시간이 걸리고 준공까지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급 정책은 시장이 신뢰할 수 있도록 장기 계획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얼마나 일관된 메시지를 주느냐가 중요하다. 소비자와 시장이 정부를 믿어야 정책 효과도 나타난다.

- 공급 확대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여전히 1970~1990년대 지어진 주택에서 살고 있다. 과거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100년 전 주거 환경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건축과 재개발은 단순한 부동산 사업이 아니라 주거 복지 사업이라고 봐야 한다. 주거 수준을 높여주는 동시에 건설 투자 효과를 통해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 서민경제가 어려운데 주택 건설은 전후방 산업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공급 확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 다주택자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주택을 여러 채 가진 게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이라면, 자동차를 여러 대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 전체의 효용이 늘어나는 일이다. 다주택자가 가진 집은 대부분 임대시장에 공급된다. 그 집을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나. 다주택을 무조건 죄악시하면 안 된다.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다운턴 때 지혜롭게 사들인 사람이 업턴 때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구조가 정상적인 시장이다. 무조건 다주택자를 때려잡아야 한다는 정책 방향은 잘못됐다. 신뢰성 있는 공급 대책이 중요하고, 특히 용적률 완화와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기존 도시의 공급 확대에 노력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주택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라면, 다주택 보유가 소득 증대와 일자리 공급으로 이어지는 순기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주택도 선택의 폭이 넓은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다.

- 과거 정부는 규제와 완화를 반복했다.

▶즉효약은 없다. 정책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 세금 정책도 갑자기 큰 폭으로 바꾸면 시장 충격이 커진다. 국민은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정책이 자주 바뀌면 시장도 불안해지고 국민도 혼란스러워진다.

- 과거 부동산 정책 중 단기 처방이 부작용을 키운 사례가 있다면.

▶1970년대 분양가 상한제를 강하게 적용하면서 사업성이 떨어져 1980년대 공급이 줄었다. 그게 10년 누적되면서 1980년대 후반 집값이 급등했다. 그래서 나온 게 5대 신도시와 주택 200만 호 공급, 그리고 토지공개념 3법(토지초과이득세·택지소유상한제·개발이익환수제)이다. 그런데 이 세 법을 동시에 도입하면서 세 부담을 피하려고 나대지에 한꺼번에 집을 지었다. 200만 호 중 신도시 물량은 40만 호밖에 안 됐고, 나머지 160만 호가 기존 도시에 갑자기 쏟아지면서 미분양이 속출했다. 1990년대 들어 재벌 계열이 아닌 건설사는 거의 다 부도가 났다. 대구의 청구, 우방도 그렇게 무너졌다. 결국 국민도, 정부도 단기 효과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 시각에서 시장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 인프라 정책에 대한 철학도 궁금하다.

▶도로를 단순한 사회간접자본(SOC)으로만 보면 안 된다. 지금은 도로도 복지 인프라다. 도로가 잘 연결돼야 의료 접근성이 높아지고 지역 간 이동도 쉬워진다. 응급환자의 생명과도 연결된다. 국가 인프라는 경제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국민 삶의 질과 복지라는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

- 의성 출신으로서 대구경북 발전 방향에 대한 생각도 남다를 것 같다.

▶대구와 경북을 따로 보면 안 된다. 하나의 경제권, 생활권으로 봐야 한다. 과거에도 대구와 경북이 함께 움직일 때 경쟁력이 높아졌다. 위천국가산업단지는 당시 대구경북 산업구조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부산·경남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지역 간 이해관계와 환경 논란 등이 얽히면서 추진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국가사업은 지역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구경북 행정통합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행정구역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와 통합된 전략이 필요하다.

- 균형발전과 지방소멸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균형발전이라고 하면 모든 지역에 같은 산업을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수원에 있으니 의성에도 반도체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이 가진 강점을 살려 발전하는 것이다. 결국 균형발전의 핵심은 서울에 있는 것을 지역에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 삶의 질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 의료와 교육, 문화, 소득 수준 등에서 지역 간 차이가 줄어들어야 한다. 수도권에 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이다.

인터뷰 말미에 권 전 장관은 자서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시 꺼냈다.

"국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도 모두 이전 세대의 투자와 희생 덕분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좋은 정책은 지혜로운 국민의 특권입니다. 국민이 정책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국가도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카페를 나서는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국가의 항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농촌 소년에서 대한민국 국토 행정을 책임지는 장관까지. 그의 인생은 결국 '국가라는 배'의 항로를 고민해온 여정이었다.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며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며 "정책은 선량한 국민을 편 가르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26.6.19. 이무성 객원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