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돈 헌재 무안할 노릇 …또 사고친 선관위, 이젠 '솟아날 구멍' 없다[금주의 정치舌전]

입력 2026-06-20 1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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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조현욱
19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조현욱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최종 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는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2023년 6월부터 실시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헌법과 법률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중앙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지위에 기대지 않고 인사·감사 분야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더욱 제고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겠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선관위는 감사기구를 사무처에서 분리하고 개방형 감사관을 임용했으며…." - 〈2025년 2월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도자료〉

'소쿠리투표', '음서제' 등 잇단 논란에도 외부 감사·수사를 모두 면해왔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소불위 권한이 드디어 종착점에 다다른 모양새다.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드러난 지 불과 보름 사이 선관위의 갖은 부실·부정이 드러나면서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막이도 명분을 다하고 만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기사회생한 선관위는 자체 개선을 천명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기회를 날려버렸다. 선관위 수뇌부는 수사선상에 올랐고, 국회에서는 야권 주도의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까지 언급하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제 선관위의 앞에는 해체와 이에 필적하는 대개조, 두 가지 선택지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노태악·위철환 싹 다 수사해야" 자체 구성 위원회도 '강경 방침'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조사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에 대해 수사 의뢰 권고 결정을 내렸다.

조현욱 진상규명위원장은 이날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연 브리핑 중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에 따르면 수사 의뢰 권고 대상은 노 전 위원장을 비롯해 위철환 상임위원, 허철훈 전 사무총장, 강동완 사무차장, 윤재수 전 선거정책실장 등 총 12명이다.

진상규명위는 서울시선관위 위원장, 상임위원, 사무처장, 선거과장과 송파구선관위 위원장, 사무국장, 선거담당관도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아울러 진상규명위는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구선관위 직원 중 이번 사태와 관련 있는 실무자 총 6명에 대해서 징계를 권고했다.

진상규명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서울시선관위는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고, 송파구선관위의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게 진상규명위의 설명이다.

진상규명위는 각종 재발방지 대책 제안에 앞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투표용지 인쇄 축소 비율 70% 이상으로 상향 ▷무번호 투표용지 최소화 ▷중앙선관위 사무처 전결 범위 축소 ▷중앙선관위원장 상근제 도입 ▷현장대응요령 중심의 매뉴얼 정비 ▷투표소별 투표율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 선관위 포함 등을 제안했다.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대국민 공론장에서 사전투표 제도 존폐 여부, 개표결과 전산 입력 과정 오류 해결방안, 출구조사 결과발표 시기 조정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한편 조 위원장은 진상규명위가 재선거를 직접 권고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 "재선거 요건은 공직선거법에 규정돼 있고 선거 소청 등 법적 절차를 통해서 법원 판단이 내려진 다음에 재선거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문제가 있다면 일부 지역에서 재선거가 가능하기 때문에 저희가 결정할 사항이라기보다는 법원 판단에 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고 답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지 부족 사태와 관련한 여야 국정조사 요구서가 보고됐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지 부족 사태와 관련한 여야 국정조사 요구서가 보고됐다. 연합뉴스

◆국회도 국정조사에 '몰표'…칼자루 쥔 윤상현 "전면 개혁"

국회에서도 선관위 개혁을 벼르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사사건건 대립을 이어오던 여야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의 권한과 조직 구성 등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선거 실시 등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큰 상황이다.

국회는 지난 18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 승인의 건'을 찬성 250명, 반대 1명으로 가결했다.

유일한 반대표는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던진 것으로 파악됐다. 최 의원은 국민의힘이 특위 위원장을 맡는 게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을 맡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제안 설명에 나서 "이번 국정조사는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원인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일한 대처 등 선거 행정 전반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명백히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너진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향후 유사한 참정권 침해의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방지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실시된다"며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을 위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소중한 투표권이 다시는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진상 규명과 선거 관리 전면적인 개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조특위는 이날 오전 첫 회의를 열어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했다.

계획서에 명시된 조사기간은 이날부터 45일이나, 본회의 의결을 통해 활동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조사 대상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각급 선관위다. 조사에는 관련 기관 보고·서류제출·청문회 등의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증인과 참고인은 위원장이 간사 협의를 거치고, 위원회 의결을 통해 채택키로 했다.

특위의 조사 범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경위와 투표용지 인쇄 수량 산정 기준 및 관련 지침 수립 과정 부실 여부에 관한 사항 ▷사태 당일 선관위의 현장 관리 제반 사항 ▷투표 지연·일시 중단 등 유권자의 참정권 침해 실태 규명 ▷선거 관리 인력 운용·예산 집행의 적정성 등 '조직체계 전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점검'이 주를 이룬다.

이외에도 시스템 전면 개혁,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도 조사 범위에 포함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G7참석·유럽순방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G7참석·유럽순방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 원포인트 개헌, 대통령 발의라도 하겠다" 李대통령도 쓴소리

'헌법에 명시된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선관위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사태 초반 직접적인 비판을 피하던 이 대통령 역시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선관위 개혁에 대한 정치권 움직임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열고 "선관위 문제는 참 황당하다. 필요하다면, 여야 간 의견 일치가 된다면 선거관리위원회에 관한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직격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아무런 통제·감시·견제 권한이 없다"며 "하다못해 선관위원장에 대한 형식적 임명권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래도 가장 공정한 대법관이 맡아 가장 공정하게 잘하지 않을까 기대했잖느냐"며 "그런데 결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예산이 없었냐. 그것도 아니다. 예산 다 편성해 줬다"며 "헌법이 정한 중립기관으로서 아무 통제도 받지 않으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데,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구가한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외부의 감시·견제가 어느 정도 가능해야 하지 않겠느냐. 위원장을 저런 식으로 대법원장이 사실상 임명하는 것처럼 해서 되겠느냐"며 "이를 위한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겠다"고 짚었다.

이 대통령은 "헌법이 너무 명징하게 독립기관으로 해 놨기 때문에 감시, 통제, 견제의 법 제도를 만드는 게 위헌 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발의하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있다)"며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걸 봐가면서 정부도 입장을 정하겠다. 어쨌든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건 확실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