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1>전문성을 갖추면 하찮은 주제, 험한 일은 없다

입력 2026-06-17 14: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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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변상벽(1730-1775),
변상벽(1730-1775), '어미닭과 병아리', 비단에 채색, 101×5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미닭과 병아리'는 화재(和齋) 변상벽의 영모화다. 다산 정약용은 66세 때인 1827년 어느 가을날 변상벽의 닭그림을 감상하고 '제변상벽모계령자도(題卞尙璧母鷄領子圖)'를 지었다. 이 작품과 비슷했을 듯하다. 첫 구에 "변이변묘칭(卞以卞貓稱)", 변상벽이 '변묘'로 불린다고 했다. 변상벽의 또 다른 별명이 '변계(卞鷄)'다. 고양이, 닭을 잘 그려 20세 무렵부터 매일 백 명이나 집으로 찾아왔고 종실과 귀인들도 그의 그림을 구했다.

변고양이, 변닭이라고 할 정도로 영모화에 집중한 것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도 당연히 산수화를 잘 그리고 싶었으나 "지금의 화가를 압도해 그 위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물을 골라 연습했다"고 했다. '지금의 화가'는 겸재 정선일 듯하다.

정선은 84세(1759년)까지 장수하며 나이 들어 더욱 필치가 오묘해 "만익공묘(晩益工妙)"라고 했다. 1759년이면 변상벽이 30세 무렵이므로 한창 그림 공부를 할 때 정선은 '넘사벽'이었을 듯. 그래서 변상벽은 "정일물이성명(精一物以成名)", 한 가지에 몰입해 명성을 얻기로 결심하고 고양이, 닭에 집중했다.

'어미닭과 병아리'는 벌 한 마리를 부리에 문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는 장면이다. 암탉은 듬직한 몸집의 굴곡을 따라 깃털을 하나하나 공들여 그려 윤기가 흐르고, 병아리의 보송보송한 솜털도 만져질 듯 촉각적이다. 옹기종기 어미를 둘러싼 새끼들은 제각각 분주하다.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아이, 뒤늦게 달려오는 아이, 어미의 다리 사이로 급히 나오는 아이, 졸고 있는 아이, 먹이 하나를 같이 물고 다투는 두 아이, 깨진 사발 위에서 물 한 모금 하늘 한번 중인 두 아이.

정약용의 제화시는 강진에 유배 중이던 22년 전(1805년) 둘째 아들 학유가 닭을 기른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양계를 하되 격조 있게 하고 깨끗하게 하면서 다른 집 닭 보다 더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기를 것이며, 생계를 도모하는데 그치지 말고 닭의 모습을 관찰해 시를 짓고, 여러 책에서 닭 기르는 법에 관한 이론을 뽑아내 '계경(鷄經)' 같은 책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품위를 잃지 않고 전문성을 갖추면 하찮은 주제, 험한 일은 없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