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대한민국연극제 출전하는 이국희 극단 온누리 대표 "슬픔을 견디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

입력 2026-06-10 16: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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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연극제 최다 수상팀' 극단 온누리, 7년만 대상
상실 겪은 인물들 40년간 기다리고, 다시 서는 내용
피드백·디테일 보강해 내달 10일 부산시민회관 무대
대구, 공연 늘었지만 극단 색깔·공동체 약해지는 경향
부산은 예산 커지고 작품으로 경쟁하는 역동적 분위기
"마음 속 진정성·향수가 연극 매력…현실 힘 되기도"

9일 예술극장 온에서 이국희 극단 온누리 대표를 만나 전국 대회를 앞두고 작품 이야기와 연극의 역할, 대구 연극의 현재를 들어봤다. 최현정 기자
9일 예술극장 온에서 이국희 극단 온누리 대표를 만나 전국 대회를 앞두고 작품 이야기와 연극의 역할, 대구 연극의 현재를 들어봤다. 최현정 기자

전국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44회 대한민국연극제가 오는 17일(수) 부산에서 개막한다. 대구에서는 대구연극제 최다 수상(6회)을 이룬 극단 온누리의 '용을 잡는 사람들'이 지역 대표로 내달 10일(금) 부산 무대에 선다. 극단을 창단해 34년째 이끌고 있는 이국희 대표는 대구 연극계를 오랫동안 지켜온 대선배 중 한 명이다. 배우 이성민, 이희준 등을 배출했으며 지역의 여러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의 단원을 거쳐갔다. 그는 극단과 계파를 넘어 후배들에게 누구보다 성심껏 피드백을 건네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선배이고 싶다고 말한다. 무대에 대한 진정성과 연극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해온 그에게 전국 대회를 앞두고 작품 이야기와 연극의 역할, 대구 연극의 현재를 들어봤다.

- 7년 만에 대구연극제 대상을 수상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연극제는 극단이 갖고 있는 최상의 기량과 예술성, 극단이 쌓아온 연출 등 여러가지를 보여주고 심사받는 자리인 만큼 늘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고자 한다. 수상하게 되면 대구 대표로 출전하는 것이니 의무감과 책임감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특히 연극제를 통해 그간의 공연과 극단 상황을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성을 점검할 수 있어 연극제는 매번 참가할 때마다 초심을 불러일으킨다.

극단 온누리의
극단 온누리의 '용을 잡는 사람들'은 제43회 대구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지역 대표로 내달 10일(금) 부산 무대에 선다.

- 연극 '용을 잡는 사람들'을 독자들에게 소개 부탁드린다.

▶작품은 네 명의 여자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해친 용을 잡기 위해 40년 동안 용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를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점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도 닮아있고, 그들의 무모한 신념이 '돈키호테'처럼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작품이다.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등장인물들이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받고 그 기억에 매몰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일어서려는 용기에 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들이 믿었던 사명을 끝까지 수행하려는 의지에 있다.

이 작품은 극단 고도의 동명의 작품을 새롭게 각색한 연극이다. 큰 차이점은 주인공인 네 사냥꾼을 비롯해 모든 등장 인물들을 여자로 바꿨다. 요즘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도 '젠더 프리'가 흔하게 이뤄지기도 하고, 성별과 관계 없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는 확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 작품을 통해 가장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검은 용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대변한다. 인물들은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삶을 허비한다. 결국 검은 용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가슴속에 남아있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꺼내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 있을까?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는 방식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

- 전국 무대에서는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계획인가

▶심사평 중 "연기자들의 거친 연기 스타일이 작품과 잘 맞는 것 같다. 연기 연습은 되도록 많이 하지 말고 장면의 기술적인 디테일을 높이면 좋겠다"는 평이 있었다. 그만큼 연기자들의 앙상블이 좋았다는 말로 들릴 만큼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은 인물 간의 관계를 밀도 있게 보강하고, 장면 전환의 디테일을 연습하고 있다. 공연을 올리는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이 대구 공연장보다 협소하고 극장 컨디션도 달라 스텝들과 열심히 논의 중이다.

- 대상 수상 당시 단원들과 가족에 대한 감사 인사도 기억에 남는다. 동료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것은 연출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공연과 극단이라는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은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 작업이다. 내가 오롯이 연출가라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것도 가족과 단원들의 희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보답이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단원들의 열정이 사라지지 않도록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9일 예술극장 온에서 이국희 극단 온누리 대표를 만나 전국 대회를 앞두고 작품 이야기와 연극의 역할, 대구 연극의 현재를 들어봤다. 최현정 기자
9일 예술극장 온에서 이국희 극단 온누리 대표를 만나 전국 대회를 앞두고 작품 이야기와 연극의 역할, 대구 연극의 현재를 들어봤다. 최현정 기자

- 대구는 오랫동안 '연극 도시'로 불려왔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역 연극계의 강점과 과제는 무엇인가

▶대구는 공연문화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50여 개에 달하는 극단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만큼 젊은 연극인들이 많아졌고 많은 인재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극단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대명소극장거리라는 독특한 연극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지자체 공연장들이 자체 제작 공연을 늘리면서 연극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지만, 반대로 극단의 집단성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극단을 중심으로 장기간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과거와 달리, 프로젝트성 공연이 많아지면서 연습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워졌고, 극단에 대한 소속감이나 작품에 쏟는 애정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이런 변화가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공연은 많아졌지만 정작 극단만의 색깔과 정체성은 점차 희석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적인 이유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장기적으로는 극단이라는 공동체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 최근 부산이 연극 시장에서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부산과 대구 연극계의 분위기 차이가 있나

▶정확히 수치로 체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부산이 가장 활동적인 도시 중 하나라는 인상을 받는다. 예산 규모도 커졌고 경쟁하는 극단들도 다양해졌다. 국제연극제를 비롯해 여러 연극제도 있어서 젊은 연극인들이 역량을 보여줄 기회도 많아진 것 같다. 물론 대구에도 청년 연극제가 있지만 형식적으로 정형화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산도 넉넉하지 않다 보니 자체 공연의 밀도는 떨어지고, 결국 극단이 자기 색깔을 갖고 작품을 만들며 경쟁·성장하는 역동성이 줄어든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 끝으로 사람들이 연극을 봐야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극은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진정성과 향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도 결국 그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하지만,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 문화의 힘이 곧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서 관객들이 소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또 연극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싶다.

9일 예술극장 온에서 이국희 극단 온누리 대표를 만나 전국 대회를 앞두고 작품 이야기와 연극의 역할, 대구 연극의 현재를 들어봤다. 최현정 기자
9일 예술극장 온에서 이국희 극단 온누리 대표를 만나 전국 대회를 앞두고 작품 이야기와 연극의 역할, 대구 연극의 현재를 들어봤다. 최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