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인복지관에는 운동과 취미, 배움의 기회가 마련돼 있다. 다만 공간의 존재만으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는 없다. 현장에서는 처음 방문하는 부담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쉽지 않은 첫 방문
"조금 더 느끼하게 발음하셔야 해요!" 얼굴을 잔뜩 찡그린 노인들이 서툴게 연필을 쥐고 알파벳을 따라 그렸다. 완만한 경사로와 손잡이가 설치된 노인복지관에서는 영어부터 우쿨렐레, 스마트폰 교육, 미술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활동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일부 노인들은 복지관 대신 반월당역을 찾을까. 이용자들은 그 이유로 '친구'를 꼽았다. 친구의 권유나 동행 없이 처음 복지관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오랜 기간 운영된 복지관일수록 기존 이용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처음 방문하는 이들의 부담이 더 크다.
실제로 지난 2일 수성구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 1층에서는 홀로 방문한 한 어르신이 이용을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한동안 이용 방법과 안내문,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끝내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려 정문으로 회관을 빠져나갔다.
이곳에서 바둑을 두던 한 노인은 "친구를 가까이에 두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회관을 이용한다"며 "혼자 처음 찾아오는 건 쉽지 않다. 집 근처에 회관이 있어도 친구를 따라 먼 곳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심리적 장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계가 말해주듯, 복지관 수 자체가 부족해 이용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은 많을 때 하루 900명이 찾는 탓에, 점심시간에는 쉴 자리조차 찾기 어려웠다.
◆ 밥심·접근성이 관건
노인복지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는 심리적·물리적 접근성을 모두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구의 인동촌노인복지관은 서구노인복지관의 분관으로, 복지관 규모를 키우기보다 생활권 가까이에 분관을 설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무작정 시설을 늘린다고 이용자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개관 초기 이용자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소규모 시설이다 보니 식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지관은 이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백년식당'을 열었다. 회관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의 작은 식당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텅그렁 식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반가운 인사가 오간다. 하루 평균 130~150명의 노인들이 1천800원짜리 식사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고기와 나물, 국으로 구성된 화려하지 않지만 집밥 같은 한 상이다. 시내 보리밥집처럼 풍성하지도, 특별히 맛집으로 알려진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접근성 덕이다.
식사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난 4월 문을 연 비산노인복지관은 비교적 짧은 운영 기간에도 높은 이용률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공간을 찾는 데 부담을 느끼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모습이다.
김보라 비산노인복지관 팀장은 "관할 지자체 주민이라면 누구나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보니 부담 없이 찾는다"며 "밥 한 끼 먹으러 왔다가 프로그램을 둘러보고, 식사 친구와 함께 복지관을 이용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역에 머물거나 집에만 있는 노인들은 우울감에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회 관계를 맺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복지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도록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데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월당역 지하가 저렴한 식사로 노인들을 불러 모은다면, 복지관은 그 식사를 계기로 관계와 배움·여가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 자발성도 핵심
부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인들이 스스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공간 조성에 나섰다. 노인 전용 복합문화공간인 '하하센터'는 자발적인 모임 활동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8일 방문한 부산 해운대구 재송 하하센터. 이날 오전 1층에서는 보드게임 모임이 한창이었다. 8명의 어르신은 익숙한 모습으로 책상 위에 검은 보를 깔고 자리에 앉았다. 보드게임 '루미큐브'를 할 준비를 마치자마자 교실은 뜨거워졌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라며 게임에 몰입한 목소리가 터졌다.
자발성을 기반으로 모임은 점차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회원들은 초등학교와 다른 노인 모임을 찾아 보드게임을 가르치는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다시 모임에 합류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모임에 참여한 권필옥(65) 씨는 "보드게임은 치매 예방이나 기억력에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모임이 구성됐다"며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대화도 많아진다. 은퇴 후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노인회관의 주 이용층보다는 젊지만, 은퇴해 노인 반열에 오른 이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며 "자유로운 공간 활용과 자발적인 모임 구성으로 방문의 문턱을 확 낮췄고, 그 덕에 이용자 만족도도 높아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