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는 길이 끝났다면, 이제는 비워내고 뉘우친 뒤 용서와 사랑으로 다시금 채우는 일이 남았다. '한티 가는 길'의 남은 구간은 총 4개다. 이 중 꼭 들러봐야 할 곳들 위주로 걸어봤다.
◆ 사기점 공소
첫번째와 두번째 구간을 이겨낸 순례자는 사기점 공소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두 번째 구간을 닫고, 세 번째 구간을 열고 있다. 공소는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성당의 대체 공간이었다. 사제들은 여러 공소를 순회하며 가르침을 이끌곤 했다.
공소 근처에는 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인들이 모여 살았다. 신나무골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사기점 공소도 옹기와 사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만들기도 쉬운 데다가 재료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포졸이 들이닥치면 챙겨야 할 세간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질 좋은 모래가 나와 사기를 굽기가 좋았다. '사기점'이라는 이름 역시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실제로 사기점 공소와 창평지 근처 땅은 붉고 무른 흙으로 이뤄져 있다. 걷는 이들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밑으로 푹 빠질 정도로 고운 모래들이었다.
이 같은 역사를 이어받아, 현 가실성당 자리가 아닌 사기점 공소 자리에 본당을 세우려 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이 지역에 살던 양반들의 반대로 적당한 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사기점 공소에서 창평지를 둘러 나가며 시작되는 '뉘우치는 길'은 대부분 급경사다. 어려운 길을 헤쳐나가며 지금까지 인생에 있었던 굴곡진 일들을 반추하라는 의미다. 과거 있었던 행위를 반성하고, 더 나은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는 산행이 시작된다.
구간과 구간을 잇는 숲길은 결코 쉽지 않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고개를 오르다보면 숨이 가빠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늦춘다. 얼굴로 달려들며 비명을 지르는 날벌레들은 그 꼴을 두고 보지 않는다. 벌레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장 큰 적은 역시 더위다. 줄줄 흐르는 땀은 눈앞을 흐리게 만든다. 벅벅 눈을 비비다가 따가움에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마시려고 가져온 물은 어느새 땀을 씻어내는 데 다 써버린다.
◆ 동명성당
구불구불 숲길과 임도를 반복해 걷다 보면, 반가운 도심을 만난다. 편의점과 3차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3구간의 종점인 동명성당에 도착한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는 문구 뒤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작은 성당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자그마한 공소였다. 반복되는 박해와 6·25 전쟁으로 공소의 흔적조차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동명성당은 건축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문을 연 건 1979년이었다. 그 해 12월, 동명성당은 어엿한 '본당'으로 승격하게 됐다.
동명성당의 순례자의 집은 '한티 가는 길'을 걷는 이들에게 단비 같은 장소다. 물을 마실 수 있는 작은 카페는 물론이고, 예약 시 이용할 수 있는 숙소도 제공한다. 기나긴 1~3구간을 걷느라 퉁퉁 부은 발을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 한티순교성지
삶을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친 이들은 끝내 한티순교 성지에 다다른다. 한티순교성지는 신나무골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해발 600m 이상 높은 곳에 있다. 높은 산지는 포졸들의 눈을 피하기 쉬웠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을 타고 올라오는 포졸을 눈치채기 쉬웠다. 게다가 한티는 대구와도 멀지 않았다. 먼저 붙잡힌 천주교인들이 대구 경상감영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어, 교인들은 대구와 한티를 바쁘게 오가며 옥바라지를 했다.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신자들의 아늑한 은신처는 결국 발각됐다. 경신, 병인박해를 거치며 한티에서는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앞서 신나무골 성지에 이장된 이선이 순교자가 경신박해 당시 목숨을 잃은 장소도 이곳이었다.
한티순교성지에 묻힌 순교자는 모두 37명, 이 중 신원을 밝혀진 이는 4명뿐이다. 나머지는 신원도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수습되지 않았다. 당시 포졸들은 닥치는 대로 신자들을 죽이고, 시체를 팔공산 자락에 방치한 채 떠났다. 결국 나중에 찾아온 다른 신자들이 순교 장소에 그대로 매장할 수밖에 없었다.
순교자들의 묘지를 보기 위해 마저 순례길을 걸었다. 조그마한 안내판이 다음 묘지로, 또 다음 묘지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름은 없고, 묘를 구분 짓게 하는 번호표와 십자가만이 묘를 지키고 있었다. 박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아기'라고 적힌 묘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종점에 다다를수록 순례를 마쳤다는 성취감에 들뜬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한티에서 마주한 이름 없는 십자가와 묘역은 그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순례길 내내 겪은 고통은 어느새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신앙을 지키다 숨진 이들의 삶 앞에서, 돌아보고 뉘우치며 사랑을 실천하라는 순례길의 가르침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