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탄광 유족 전석호 씨 별세…"더는 한 품고 세상 떠나지 않길"

입력 2026-05-31 18: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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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별세…시민단체 "가족 유골도 못 안고 떠나"
"한일 양국 정부는 희생자 문제에 책임 있는 태도 취해야"

전석호 씨의 아들인 전영복 일본장생탄광희생자 대한민국유족회 사무차장이 1942년 장생탄광 수몰사고 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위패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전석호 씨의 아들인 전영복 일본장생탄광희생자 대한민국유족회 사무차장이 1942년 장생탄광 수몰사고 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위패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30일 장생(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유족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오던 전석호(93) 씨가 별세했다. 시민단체는 하루 빨리 장생탄광 희생자 문제에 한일 양국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촉구하고 나섰다.

장생탄광희생자귀향추진단은 31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장생탄광 수몰사고 희생자의 유족이자 진상규명 및 유골봉환 운동에 헌신해 온 전석호 씨의 별세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비극 속에서 희생된 가족의 한을 풀고자 오랜 세월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해 오셨다"면서도, "장생탄광 수몰사고가 발생한 지 80여 년이 지났음에도 고인께서는 사랑하는 가족의 유골을 품에 안아보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나셨다"고 했다.

앞서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해저탄광인 장생탄광이 무너지며 총 183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법적 기준보다 얇았던 갱도 천장이 바닷물 무게와 수압을 견디지 못해 무너진 사고였다.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동원된 1천 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일한 공간에서, 그날 136명의 조선인이 숨졌다. 그중 전석호 씨의 아버지를 포함한 75명은 대구경북 출신이었다.

전 씨가 학교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간 탄광에는 무너진 갱도만이 남아 있었다. 사고 이후 매일 탄광을 찾아 울었다던 전 씨는 일본에서 열리는 장생탄광 희생자 추도식이 있을 때마다 대구에서 우베로 향했다.

지난해 8월과 올해 2월, 장생탄광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일부가 발견됐으나 이직 신원은 특정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19일 안동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 절차에 곧 착수하기로 합의했으나, 과거사 논의가 없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귀향추진단은 "우리는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남은 유족들과 함께 진상규명, DNA 감정의 조속한 실시, 희생자 신원 확인, 유골 봉환과 명예회복을 위해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일본 정부는 더는 유족들이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장생탄광 희생자 문제 해결에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전영복 씨의 빈소는 대구 남구 앤드요양병원 백화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발인은 오는 6월 1일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