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갤러리 '리플링 스트럭처(Rippling Structures)'
시멘트, 합판, 돌 소재로 한 조각 전시…6월 30일까지
시멘트와 나무 합판, 돌. 각기 다른 소재로 조각 작업을 해온 중견 작가 3인의 전시가 021갤러리(대구 동구 안심로 54)에서 열리고 있다.
◆예술이 된 근대 건축물의 파편들
회색빛의 도시를 압축해놓은 듯한 시멘트 큐브들이 블록처럼 쌓였다. 큐브를 채운 것은 건축물 외벽의 일부를 본떠 축소시킨 작은 조각들. 거칠고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낸 섬세한 형태는 작품을 한걸음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한다.
김상균 작가는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들을 소재로 작업한다. 옛 서울시청이나 조선총독부, 서울 화신백화점, 손탁호텔처럼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그 예다. 그는 시대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건축물들을 실제 모습 그대로 기록한다.
작품의 테마는 '기억, 그 이전에 과거로부터'. 작가는 "제국 침탈의 상징인 블랙 레거시지만, 이것을 우리 사회가 품어야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할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기억을 기록하고 기록을 앞으로 또 기억하고자, 그 시대의 유산을 재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유학 때, 맨해튼에 가니 150년 된 건물들에 사람이 살고 있더라고요. 헌데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에는 관광지를 제외하고 그런 역사적인 공간이 거의 없는거예요. 왜 시간을 담은 공간은 없을까, 궁금해하며 도시를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죠.
세계적으로 식민주의를 겪은 나라들은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에 대한 연구를 해요. 그것을 겪은 국민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대책을 내놓는지. 제가 사회학자나 정치가가 아니니 답을 내릴 순 없지만, 그저 예술가로서 기록하고 보여주며 환기시키는 작업을 하는겁니다."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는 그 외벽들을 파편화하고 장식화함으로써, 예술품의 한 구성품으로 재배치한다. 아픈 역사의 산물들을 길어올려 자본주의 시대의 시스템을 덧입힌 뒤 새로운 장식으로 기억되게 한 작가만의 방법이다.
그는 "어떤 사람은 그 시대의 유산을 다 지워버리고 싶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활성화시킴으로써 시대에 맞게 재정리하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며 "나는 단지 그렇게 잊혀지고 등한시하는 것들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간에 대한 탐구 흥미로워"
숯 조각 등을 매다는 작업으로 유명한 박선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나무 합판을 재료로, 공간에 대해 탐색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중·고등학교 때 줄곧 그림을 그려오다 조소과로 진학하며 조각을 시작하게 된 그는 그 때부터 끊임없이 공간에 대한 탐구를 이어왔다.
전시 작품은 연필로 빽빽하게 칠한 합판을 겹겹이 중첩해 만든 하나의 집이다. 작가가 주목한 지점은 외부가 아닌 내부. 그는 "공간을 나누고 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 그리고 그림자 등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에 대해 다루고자 했다"며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나누고 다시 쌓으며 내부 구조를 만들어가는 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탐구의 과정 속에 있다. 사진을 일자로 길게 잘라 일부를 흩어지게 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시점에 대한 분석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해체함으로써 시점을 왜곡시키거나 흐트리는 거죠. 잘라서 재구성하고 조금씩 지워나가면서 점점 분해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숯 작업과 합판 작업을 병행하며 항상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그는 "숯은 다소 감성적인 작업, 합판은 이성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한 가지 작업만 계속 하고 있으면 지치기에 다양한 작업을 바쁘게 이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돌 깎아내 만든 자연과 도시의 풍경
푸른 빛의 결들이 넘실대는 정광식 작가의 작품. 그 결은 심연의 물결이 되기도 하고, 나무나 풀이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유독 그 결의 입체감이 두드러지는데, 짙은 색의 대리석을 그라인더로 깎아 만들기 때문. 그 위에 칠한 아크릴 물감은 반질반질하게 닦아낸 대리석과 어우러져, 마치 햇빛에 잎과 물결이 반짝이는 듯 독특한 분위기와 색감을 나타낸다.
관람객들이 볼 때는 바다, 혹은 숲이 생각나는 작품이지만 작가는 따로 대상을 두고 작업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의 형상, 즉 심상을 따라 작업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녹색을 칠할 뿐이다.
"작업할 때 사실 별 생각을 하지 않아요. 밑그림도 없이 그냥 그라인더를 들고 작업하는 거예요. 애들이 놀다보면 밥 먹을 때도 모르는 것처럼, 그냥 재미있어서 그 상태를 즐기죠. 뭘 해야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망칠 일도 없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의 풍경을 세밀하게 조각한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자연이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 이천의 작업실에서 20여 년간 작업해 온 그가 가끔 고향인 서울이 그리울 때 한다는 작업이다.
"자연의 풍경과 도시의 풍경을 조각할 때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어떤 평론가가 '도시도 이제는 이 시대의 인간이 맞닿은 하나의 자연과도 같다'고 했는데, 우리가 사는 도시도 멀리서 보면 예쁘고 또 정감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
대학 시절부터 돌로 작업해 온 그가 꼽는 돌의 매력은 변치 않는다는 점, 그리고 우주의 시간, 그 태고의 시간을 담고 있있다는 점이다. 회화와 또 다른, 돌 조각의 묵직함과 의외로 섬세한 아름다움을 그의 작품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일, 월요일은 휴관한다. 053-743-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