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알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조형물이 반기는 이곳은 대구 북구의 안경특화거리다. 이곳은 한국의 안경 80%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안경 생산지다.
골목에 있는 소매 안경원은 약 4곳이다. '할인점'이라는 안내판을 단 가게들은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들었다. 10년 동안 소매 안경원을 운영한 A씨는 "예전에는 10여 곳의 소매점이 있었는데, 하나둘 문을 닫게 됐다"며 "30년 넘게 운영한 다른 가게들과 비교하면, 10년은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며 긴 역사를 설명했다.
특화거리라고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소매 안경원은 많지 않은 편이다. 특화 거리를 이끄는 핵심은 안경 공장이다. 안경 공장은 대로가 아닌 골목 안 공단 구석구석과 아파트형 공장 '아이빌' 속에 숨어 있다.
일반 시민들이 오가는 길목에는 안경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버스정류장 지붕과 가로등에는 주황색 안경이 걸려 있고, 안경 너머로 희번덕하게 뜬 눈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끈다. 인도 바닥에도 안경 그림이 새겨져 있어 이곳이 안경특화거리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언제부터 이 골목 곳곳에 안경이 깃들게 됐을까. 골목을 걸으며 그 역사를 되짚어봤다.
◆ 수입으로 시작한 안경 역사
한국에 안경이 등장한 건 임진왜란 전후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김성일 선생의 안경 그림을 통해 그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중국과 일본과 교류하면서 안경을 당시 조선으로 안경을 수입해 왔다.
수요가 늘면서 조선에서도 자체 안경 제작에 돌입했다. 1767년 황윤석의 『이재유고』에는 친구 김이신이 "이것은 경주의 수정으로 만든 안경"이라며 귀한 수정안경을 선물한 기록이 남아 있다.질 좋은 수정이 많이 산출된 경주는 당시 특산물인 수정으로 만든 옥돌안경을 만들어냈다. 수정은 유리 렌즈에 비해 흠이 많아서, 사물을 뚜렷하게 보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안경은 신분이 높은 상류층만 착용할 수 있다고 인식되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 대중화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 한국 첫 안경 공장, 대구 북구에
그 흐름을 이어간 게 대구 북구였다. 1946년 3월, 한국 최초로 '국제세루로이드 공업사'라는 안경업체가 세워졌다. 김재수 대표는 일본에 작은 안경테 제조공장을 운영하다가, 태평양 전쟁을 맞아 어쩔 수 없이 공장의 문을 닫았다.
그는 일본에서 일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일본에서 쓰던 공장 기계와 재료들을 모조리 긁어와 고향인 경북 선산으로 옮겨왔다. 일본 정부에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을 만들겠다'는 말로 둘러댄 덕에 해낸 일이었다. 하지만 선산은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아 제대로 된 안경을 만들기엔 부족해, 예전만큼의 안경을 만들 수가 없었다.
김재수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적당한 땅을 물색했다. 이때 새로운 보금자리로 택한 것이 대구였다. 대구는 서울과 부산의 중심으로, 기찻길이 나 있어 전국 어디든 쉽게 유통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다. 6.25 전쟁의 피해도 적어 공장을 꾸리기 적당했다. 그 덕에 후발주자도 나타나며, 대구 북구는 안경 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었다.
단순히 많이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도 샘솟았다. 1961년 안흥진 대표의 안흥공업사는 국내 최초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사용하는 안경을 찍어냈다. 가볍고 편안한 안경은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흥망성쇠 모두 겪은 안경산업
산업 개발에 속도가 난 건 박정희 정권과 만나서다. 품질 좋은 안경은 외화벌이 수단으로 제격이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안경은 대량생산되기 시작한다. 이미 해외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제 안경보다 저렴한 덕에 한국 안경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처음에는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주로 수출하다가, 1960년대 말에는 미국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이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걸면서, 안경산업의 지위는 위태로워졌다. 위기를 직감한 정부는 2006년 이곳을 안경특구로 지정하고 새 활로를 찾기로 했다. 골목의 역사를 잇겠다는 의지였다.
안경골목에 밀집한 업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테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첨단 기술을 접목하기로 했다. 신소재 개발과 VR 등 IT 산업과의 만남도 시작됐다. 이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도 뒤지지 않는 고품질 안경을 개발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둥근 안경알 2개가 상징처럼 자리 잡은 골목. 자칫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조형물 안에는 한국 안경산업의 흥망성쇠가 숨어 있었다. 일본에서 들여온 기술로 첫발을 뗀 뒤 세계 시장을 누볐고, 거센 경쟁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변화를 멈추지 않은 역사가 있다.
과거의 영광과 위기의 시간을 모두 품은 안경특화거리는 오늘도 쉬지 않고 안경을 만들고 있다. 한국 안경의 다음 100년을 위해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