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만 하면 된다"는 말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월급은 적어도, 중소기업이어도, 비정규직이어도 일단 노동시장에 들어가면 경력을 쌓고 더 나은 자리로 이동할 기회가 충분했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高度成長)은 그렇게 수많은 청년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며 이뤄졌다. 그런데 이런 취업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3.7%에 그쳤다. 반면 30대 고용률은 81.0%였다. 두 세대 간 격차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수준까지 벌어졌다.
전체 고용률은 역대 최고라는데 청년만 뒤처진다. 정부는 일자리 증가를 자랑하지만, 체감 현실은 정반대다. 좁아진 노동시장 입구 앞에서 수많은 청년이 마냥 기다리고 있다. 고용 통계가 현실을 가리는 숫자처럼 보일 정도다. 구직 활동을 멈춘 '쉬었음' 청년들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는 청년들에게 자격증을 따고, 인턴을 하고, 영어 점수를 올리라고 재촉한다.
이재명 정부는 청년 고용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언급하며 성장의 성과가 청년 일자리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책은 지원금, 금융상품, 단기 일 경험 사업 중심이다. 청년 자산(資産) 형성 지원 정책도 잇따르지만 정작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적금 통장이 아니라 첫 직장이다. 노동시장에 편입도 못 한 청년에게 자산 형성부터 요구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다. 정부는 재계에 청년 채용 확대를 요청했고 기업들도 신규 채용 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체감하는 채용 시장은 갈수록 냉혹해지고 있다. 공개 채용이 줄고 수시 채용과 경력직 선호가 대세가 됐다. 신입을 키우는 비용은 줄이고, 필요한 경험은 다른 곳에서 쌓아오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책임은 다시 청년 개인에게 돌아간다. '눈높이가 높다, 중소기업을 기피(忌避)한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욕한다. 기업은 신입 채용을 줄이고, 대학은 끝없는 스펙 경쟁으로 내몰고, 정부는 단기 지원 사업을 반복한다. 이런 흐름에 AI 확산까지 가세했다. 생성형 AI는 보고서 초안 작성, 자료 조사, 번역, 코딩 보조, 데이터 정리 등 초급 화이트칼라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거나 축소시키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AI 시대에 입문형(entry level) 일자리가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AI는 인간 노동 전체를 단번에 대체하기보다 인간이 숙련을 쌓는 입문 단계부터 지우고 있다. 입문 단계가 사라지면 미래의 숙련 노동자도 사라진다. 한국 사회는 '경력직만 원한다'면서 미래의 경력직이 어디에서 올지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한다.
경제는 적은 인력으로 더 높은 실적을 내는 구조로 이동한다. 첨단산업은 성장하는데, 청년 첫 직장은 줄어드는 역설(逆說)이다. 첫 직장을 얻지 못한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소비와 창업에서도 멀어진다. 사회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져 버리면 잠재성장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고용률 숫자를 내세우고, 기업은 경력직만 찾으며, 대학은 학생들을 끝없는 취업 준비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과거 한국 경제는 청년에게 자리 하나쯤은 내어줄 수 있는 사회였다. 그 기회가 더 나은 삶으로 올라가는 디딤돌이 됐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첨단산업의 성과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다음 세대를 노동시장 밖에 세워두고 있다. 신입이 사라진 노동시장은 결국 미래의 전문가도, 미래의 소비자도, 미래의 부모 세대도 길러내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