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꽃을 보고자 함이었다. 아 글쎄, 봇도랑 건너 산그늘 비탈에 매화나무를 심었다지 뭔가. 매화 소식이 들려오면 늘 허기졌다. 응달이라 꽃망울은 입을 앙다물었고, 먼발치에서 희미한 자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가을, 마누라 매운 잔소리에 남편은 결국 괭이를 들었다. 그렇게 매화나무 한 그루를 마당 가로 옮겨왔다. 가지치기한 엉성한 몸피의 나무는 오종종히 꽃망울을 달았다. '매화는 일생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 不賣香)'.깊고 향기로운 봄날이었다. 꽃 진 자리에 어느덧 뻐꾸기 탁란 같은 열매가 탱글탱글 여물고, 뻐꾹 뻐꾹 오월은 저물어간다.
예부터 식약동원(食藥同源) 사상에서 귀하게 대접받아 온 매실은 '음식이자 약'이었다. 맛은 시고 성질은 평하며, 수삽(收澁)과 해독 효능, 폐와 대장에 작용한다. 약으로 사용하는 오매(烏梅)는 맛이 시고 떫다. 약성이 따뜻하여 기침을 완화하고 만성 설사와 만성 이질을 멎게 하며, 식욕부진과 소화불량, 갈증에 도움을 준다. 매실은 해독 작용을 하는데, 매운탕이나 생선 요리에 매실주와 일본의 우메보시를 곁들이는 것은 물고기의 독을 풀어주기 위함이다.
매실의 신맛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거두어들이는 성질이 있는데 이를 '수렴(收斂)'이라 한다. 예를 들면 과한 땀, 오줌, 피, 정액 등을 조절해준다. 단, 감기 초기와 이질과 설사 초기에는 사용을 금한다. 몸 안의 열이나 독소를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게 우선이다. 무더위에 땀을 배출해야 할 때와 땀이 적은 사람, 위산과다일 때도 섭취에 신중해야 한다. 또한 생매실에는 아미그달린(cyanogenic glycoside)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어 복통이나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
중국 삼국시대 때 조조의 군사들은 갈증에 지쳐 움직일 수 없었다. 조조는 "저 산 너머에 커다란 매림(梅林)이 있다."고 하였다. 병사들은 신 매실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였고, 갈증이 완화되어 행군할 수 있었다. 수양제(隋煬帝)는 향락을 즐기다 몸이 허약해졌다. 막군석(莫君錫)이라는 어의는 '신장의 물기운이 부족하여 양기(불기운)가 상승한 것'이라고 하였다. 어의는 약 대신 매실이 익어가는 그림을 주면서 감상하라고 하였다. 양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입에 침이 고이고 갈증이 사라졌다. 상상만으로 심리적 효과를 얻은 경우인데, '문매지갈(聞梅止渴)', '망매해갈(望梅解渴)' 고사성어의 어원이다.
조선 선비들은 매화를 귀히 여겼다. 추운 겨울 끝에 가장 먼저 피는 매화를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아 절개와 치유의 상징으로 여겼고, 매실은 청렴함과 인내의 의미로 보았다. 부르는 이름도 다양했다. 매화에 눈이 내리면 설중매(雪中梅), 달 밝은 밤의 월매(月梅), 옥같이 고운 옥매(玉梅), 철 이르게 피는 조매(早梅),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매(垂枝梅), 붉은 홍매(紅梅), 유독 검붉은 흑매(黑每), 겹겹 꽃잎이 화려한 만첩매화(萬疊梅花), 매화를 찾아 나서면 심매(尋梅) 또는 탐매(探梅)라 하였다.
장아찌나 매실청 담그는 청매(靑梅), 향기로운 매실주 만드는 황매(黃梅), 껍질을 훈증하여 까맣게 말린 오매(烏梅), 소금물에 절여 햇볕에 말린 백매(白梅)는 매실을 일컫는다. 꽃은 꽃대로, 열매는 열매 대로 귀하다. 얼마 전 꽃을 보았을 때는 매화나무였건만, 바야흐로 열매를 달고 있는 매실나무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