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감사의 정원'이라는 돌기둥이 하나둘 섰다. 논란도 함께 따라붙었다. 예산 낭비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선거용 사업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세종대왕상 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나는 그 기둥을 바라보다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깊은 감사의 마음 그리고 깊은 부끄러움이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관 벽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지도 못한 사람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짧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겨우 찾아낼 아시아의 작은 나라, 그곳의 이름 모를 사람을 위해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6·25 전쟁에서 유엔군 사망자는 5만여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미군만 3만3천여 명이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총 54만여 명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영국에서도 왔고 캐나다와 터키, 호주, 심지어 에티오피아에서도 젊은이가 달려왔다. 그들은 한국어를 알지 못했고 한국 땅조차 밟아본 적 없던 젊은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왔고 싸웠으며 결국 죽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가 됐다. 단 한 명의 사망 사고만 발생해도 뉴스에서 대서특필된다. 국가는 나서서 사과한 뒤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재발 방지책을 논의한다. 그만큼 오늘날 인명의 무게는 묵직하게 다뤄진다. 수만 명의 외국 젊은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를 위해 이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건 어떻게 다뤄져야 옳은 것일까. 현재의 감각으로 환산하면 할수록 그 희생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만약 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6개 정치범수용소에는 약 19만 명이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출신인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는 "북한 수용소는 내가 어린 시절 나치 수용소에서 겪었던 것보다 더 끔찍하다"고 할 정도다. 북한에선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외부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불만을 입 밖에 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간다. 우리 이야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엔 반드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다양한 사건이 있다.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이름조차 몰랐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수만 명이 스스로의 몸을 내던진 이 희생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들은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죽으러 온 젊은이였다. 지금에서야 광화문에 세운 걸 반성해야지 정쟁 따위를 할 대상이 아니다.
이종길 국군권익포럼 대표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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