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FF 2026 노미네이트 작품 배출…생성형 AI 기반 콘텐츠 수업 운영
생성형 AI가 디자인 교육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능력이 디자이너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혔다면, 이제는 AI가 쏟아내는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 사운드를 어떻게 해석하고 맥락화하느냐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 생성형 AI를 활용한 실험적 교육을 이어가며 AI 시대 디자인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계명대 시각디자인과는 생성형 AI 기반 커리큘럼을 운영한 지 3년째를 맞았다. 학과는 AI를 단순한 제작 도구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사고와 기획 영역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이미지와 영상은 물론 사운드, 음악, 더빙 등 다양한 생성형 AI를 교육 과정에 접목해 학생들이 전공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학과 측은 AI 시대 디자이너의 역할을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단순히 시각 결과물을 제작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영역의 기술과 콘텐츠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AI를 활용해 빠르게 콘셉트를 시각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실험적으로 제작하는 수업을 경험하고 있다.
생성형 AI 기반 디자인 교육을 이끄는 장순규 조교수는 AI 기술이 디자인 프로세스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정보를 탐색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줄여주면서 디자이너가 새로운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 조교수는 "사물과 현상이 실존하지 않는다면 직접 관찰할 수 없습니다. 학생은 서비스를 운영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주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실존하지 않는 미래의 경험과 상황을 AI가 진짜처럼 보여준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탐구로써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마치 SF 영화 속 디바이스와 서비스처럼 말입니다. 이는 사변적 디자인의 태도에 맞닿아 있습니다."고 말했다.
학과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사변적 경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변적 디자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과 미래 환경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험과 문제를 탐구하는 디자인 접근 방식이다. 생성형 AI는 이러한 상상을 실제처럼 구현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 학생들과 연구진은 AI를 통해 다양한 미래 경험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 시대 왕의 어진을 복원해 미디어아트 형태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AI 기반 이미지 생성 기술을 활용해 훼손되거나 남아 있지 않은 요소를 복원하고, 이를 디지털 콘텐츠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AI 기반 가상 인물과 영상 통화를 할 경우 사용자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와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감정과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디자인 관점에서 접근한 사례다.
AI가 사용자의 일기를 음악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사용자가 작성한 하루의 기록과 감정을 AI가 분석해 음악 형태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듣는 일기'라는 경험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텍스트와 음악, 감정 경험을 융합한 프로젝트로 생성형 AI가 감성적 경험 디자인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영상 콘텐츠 교육 역시 변화하고 있다. 커리큘럼을 함께 운영하는 이형민 겸임교수는 학생들이 어릴 적부터 경험해온 다양한 장르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사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업에서는 실사 영상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형태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작된 일부 작품은 'WAIFF 2026 AI 국제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시나리오 구성부터 영상 제작, 음성 더빙, 사운드 디자인까지 콘텐츠 제작 전반을 경험하고 있다.
이형민 겸임교수는 AI 시대 디자이너의 역할 변화에 대해 "AI 등장 이전의 디자이너가 최종 결과물을 멋진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AI가 생성한 방대한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실제 디자인 맥락에 맞게 실체화하는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따라서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 과정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디자인 의도에 맞춰 결과물을 제어하는 '행위주체성(Agency)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고 말했다.
학과는 AI 활용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 능력'을 꼽고 있다. 생성형 AI가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디자이너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어떤 과정에서 AI를 활용하고, 어떤 부분은 직접 디자인 툴과 인간의 감각으로 보완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학생들은 프로젝트 과정에서 AI가 만든 결과물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전체 맥락과 목적을 기준으로 AI 생성물을 선별하고 수정하며, 필요할 경우 전통적인 디자인 작업 방식과 병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학과 측은 이러한 과정이 결과물의 완성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AI와 인간의 협업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생성형 AI는 전공의 경계를 허무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 교육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과거에는 영상, 그래픽, 음악, 사운드 등 각 분야가 비교적 분리돼 있었다면, AI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다양한 콘텐츠 형태로 동시에 구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도 단일 분야 기술 습득보다 기획과 세계관 구성, 경험 설계 역량을 함께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계명대 시각디자인과는 이러한 실험적 교육을 통해 AI와 공존하는 시대의 디자이너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AI를 활용해 새로운 경험과 서사를 설계할 수 있는 창작 역량을 갖춘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다.
한 AI업계 전문가는 "생성형 AI는 단순히 제작 시간을 줄여주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시뮬레이션 가능한 형태로 확장시키는 도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디자인 교육 역시 결과물을 만드는 기술 중심에서 벗어나 AI와 협업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경험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특정 툴을 다루는 숙련도를 넘어 AI가 생산한 수많은 결과물 가운데 사회적 맥락과 감정, 사용자 경험에 맞는 방향을 선별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학생 시절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경험하는 과정은 미래 산업 환경에 대응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