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점점 넓어지고, 공공기관과 상업시설도 덩달아 자리를 옮긴다. 도심이 재구조화되면서, 기존의 쓰임을 다한 곳은 또 다른 용도를 부여받는다.
경상감영공원이 있는 대구 중심부는 또 한번 변신한다. 경상감영이 경북도청이 된 이후 두 번째로 맞는 변화였다. 경북도청이 산격동으로 옮기며 빈 공간은 시민들의 유희 공간으로 거듭난다.
이곳은 대구 중심부에 걸맞는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는다. 스케이트장뿐만 아니라 조각공원, 연못과 분수, 어린이 놀이터 등 다채로운 놀거리가 계획됐다. 기존에 있는 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과 잘 어우러지게 설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지의 면적은 좁아졌다. 경북도청을 이전하는 데 상당한 재원이 들어서다.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기존 부지의 일부를 매각했는데, 그 자리에는 중앙상가가 들어섰다. 도면 상에도 오른쪽에 중앙 상가의 모습이 일부 그러져 있다.
이곳은 한때 백만공원으로 불렸다. 대구 시민이 백만명에 육박할 거라는 기대를 담은 별명이었다. 완성된 중앙공원은 1970년 시민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줄곧 시민들의 쉼터로 기능했다.
또 다른 이름의 중앙공원도 새 쓰임을 받은 곳이다. 2.28기념 중앙공원은 과거 대구중앙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빽빽한 상가 중심에 있던 초등학교를 허물고, 시민들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원이 들어선다. 주차장과 공원의 면적을 넉넉하게 확보해, 주변 상가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흔적조차 사라진 북후정도 빼놓을 수 없다. 북후정은 대구 읍성이 축조되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층으로 된 누각인 북후정에 오르면 대구의 풍경을 전부 볼 수 있었다. 뒤로는 서문시장이 길게 뻗어있었다. 북후정은 한양과 부산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와도 맞닿아, 대구 시민들이 모이기 적당한 공터였다.
그렇다보니, 북후정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대구 시민들이 모이기 적당했다. 서상돈 선생은 북후정 2층에 올라 국채보상운동취지서를 읽었다.
북후정은 대구 읍성이 사라지고, 십자도로가 들어선 1910년대 즈음 헐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 상가와 도로가 들어서면서 북후정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