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며 살아온 세대, 노후가 더 고달퍼
대리기사, 도배기능사 등 알바라며 겨우 연명
부모 부양 마지막 세대, 자녀 부양 못받는 첫 세대
♬ 낳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리는 날이다. 누구에게나 생각만해도, 울컥하게 하는 두 글자의 두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엄마!", "아빠!"일 것이다. 4전 5기의 신화, 한국 최초의 원정 챔프 홍수환 선수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소감으로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스포츠 선수의 수상소감에 등장하는 부모는 말할 것도 없다. 각종 분야에서 큰 상을 수상한 이들이 꼭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공통 분모가 바로 부모인 것이다. 심지어는 중형을 선고받고 경북 북부교도소(청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들조차 부모를 들먹이면, 머뭇거리며 인간적인 감정이 북받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어버이날은 부모와 자녀에게 다 기쁜 날이어야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정반대다. 부모를 잘 모셔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여건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둬야 할 나이(60세 전후)임에도,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감으로 마음은 천근만근(千斤萬斤)이다. 충분한 경제력이 뒷받침되면 걱정이 덜 하겠지만, 다수의 중산층과 서민들은 부모봉양과 자식 뒷바라지그리고 자신의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부모를 부양해야 하지만 자녀에겐 그런 기대조차 하지 못하는 '마처세대'의 아린 가슴이 요즘 1960년대 생들의 공통 관심사이자 술자리의 단연 화두다. '마처'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정작 자녀에게는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주 주간매일은 마처세대의 아린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1960년대생, 그들은 8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경제가 도약할 때 노동시장에 진입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민주화를 위해 힘썼으며 IMF 금융 위기때 구조조정이라는 파고를 온몸으로 이겨냈다. 일 만하면서 살아왔다. 대한민국의 고도의 성장시기의 중심에서 역할을 하던 세대였고,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하지만 이제는 초고령 사회의 문을 열며 은퇴를 했거나 정년을 맞이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있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경제의 중심에서 벗어나 노후를 즐길 시기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연로하신 부모를 봉양하거나 취업준비나 진학을 위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자식을 위해 이중으로 돌봐야 하는 부담으로 퇴직 후에도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어버이 날을 맞아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의미의 '마처 세대'의 현실속으로 들어가 본다.
#1. 지난달 30일 밤 11시. 대구 달서구 상인동 술집거리에서 만난 곽인호(가명. 62). 대리운전 일을 하는 곽 씨는 콜을 놓칠 세라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때, 성서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부장급으로 32년간 근무한 뒤 3년 전 퇴직했다. 이후 조그만 치킨집을 차렸다가 퇴직금의 일부를 날리자, 나이 제한을 받지 않는 대리기사를 하고 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92세인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 간병하느라 꼼짝도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상시로 간병인을 둘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고, 자신 말고는 마땅히 돌볼 사람도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낮엔 시간제로 간병인을 쓰고 휴일엔 오롯이 자신이 어머니를 돌본다고 했다.
또한 미국으로 유학 간 큰 아들의 유학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밤 늦은 시간까지 대리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최근 미국과 이란과의 중동전쟁으로 환율까지 치솟아 학비부담으로 걱정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또한 친구나 지인들의 경조사 연락을 받을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체면치레라도 얼마라도 챙기고 나면 항상 자신의 지갑은 가벼워진다고 한숨지었다.
#2. 대구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태훈(가명. 57) 씨는 퇴근시간 무렵 휴대폰이 진동했다.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다는 요양보호사의 연락이었다. 차를 몰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무너지는듯 했다. 1시간 남짓 어머니와 말벗으로 보낸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돌아오니 대학원 졸업 후 취업 준비에 3년째 방안에 틀어박힌 아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말 한마디 붙이려니, 돌아오는건 "신경 좀 꺼 달란다"고 한다. 거실로 가니, 탁자 위에는 지난달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가 놓여있다. '45만4천600원'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요양원비 123만원, 아들 용돈 60만원, 식비와 대출금 등 여러 지출로 통장 잔고는 매달 밑바닥을 보이고 있다. 정년 퇴직까지 얼마 남지않아 은퇴 후 노후를 생각하니 캄캄하기만 하다.
#3. 지난달 30일 경산의 한 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서 만난 손인호(53) 씨. 베이비부머 마지막 세대인 손 씨는 지난해 11월 대구직업전문학교에서 도배기능사 교육을 마치고,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도배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다. 두 자녀(25세, 21세)와 쇠약해져가는 양가 부모까지 챙겨야 하는 등 돈 들어가야 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손 씨는 10여 년 고깃집을 잘 운영하다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공인중개 업무가 줄어, 노후도 줄비할 겸 도배를 배우기로 했다. '나는 아직 젊다'며 60대에 접어들기 전에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이 일을 선택했다고 했다.
곽 씨와 김 씨처럼 1960년대에 태어나 기업에서 이미 정년을 맞았거나 앞두고 있지만, 부모와 자식을 이중 부양해야 하는 부담으로 퇴직 후에도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이들의 노후는 기대와 달리 고단하게 흘러가고 있으며,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부양의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