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근대사] 공짜의 유혹과 노예의 길

입력 2026-05-0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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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성인 1인당 월 2,500프랑(약 300만 원) 기본소득 안 찬반 국민투표 부결

북한 주민들이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열렬 환영하고 있다. 토지개혁 덕분에 북한은 하루아침에 공산화가 완성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열렬 환영하고 있다. 토지개혁 덕분에 북한은 하루아침에 공산화가 완성되었다.

한국인들은 공짜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라는 속담이 유행하겠는가. 이는 단순히 이득에 민감한 민족성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을 넘어,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무상(無償)'에 대한 원초적이고도 위험한 갈망을 시사한다. 대부분의 국민은 국가가 공짜로 나누어주는 현금을 '하늘에서 떨어진 복'으로 여긴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6년 6월 스위스는 성인 1인당 월 2,500프랑(약 300만 원)이라는 파격적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 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76.9%라는 압도적 반대로 부결되었다. 스위스 국민은 "일하지 않는 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노동의 존엄성을 파괴하며,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사회적 실험"이라며 기본소득 안을 거부했다.

그들은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막대한 세금 인상과 국가의 간섭이라는 '독배'를 간파한 것이다. 핀란드와 네덜란드 등 복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 국가들도 스위스와 비슷하게 기본소득을 실험한 후 이를 철회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독립심과 철학적 토대가 국가의 존립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 국민은 국가가 국민에게 현금 나눠주는 것을 당연한 현상으로 갈망한다. 그들은 국가를 '어버이' 같은 가부장적 존재로 인식한다. 따라서 어버이(국가)는 자식(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기대가 포퓰리즘과 결합하고 있다. "나랏돈은 임자 없는 돈"이니 "못 받으면 나만 손해"라는 각자도생의 심리 덕분에 국가 재정은 파멸적 위기를 맞고 있다.

스위스에서 2016년 실시한 기본소득 안 국민투표 내용. 스위스 국민들은 소득과 관계없이 성인 모두에게 월 300만 원을 제공하는 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다.
스위스에서 2016년 실시한 기본소득 안 국민투표 내용. 스위스 국민들은 소득과 관계없이 성인 모두에게 월 300만 원을 제공하는 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다.

◆유교와 공산주의는 닮은꼴

한국인이 공짜를 좋아하고 교조적 평등주의에 경도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조선 500년을 지배한 주자성리학적 가치관이다. 유교의 이상향인 '대동(大同) 사회'는 사적(私的) 이익이 사라진 도덕적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의 '계급 없는 사회'와 닮은꼴이다.

조선의 유교적 도덕경제는 농업을 장려하되 상공업을 통한 재물 축적은 비판했다. 부(富)는 악의 근원이며, 청빈(淸貧)은 고귀한 선비의 가치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가난은 선(善)이고 부의 축적은 악(惡)"이라는 왜곡된 이분법을 낳았다. 남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해 부를 일군 이들을 부도덕한 '금수저'로 몰아세우고, 무능한 가난을 '흙수저'라는 피해자 서사로 포장하는 가치관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우리 국민 중 약 20만 명이 공산주의 활동에 참가하며 다른 정당을 압도했던 역사적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사유재산 관념이 희박했던 당시 민중들에게 지주들의 땅을 빼앗아 공짜로 나눠준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조선 시대 전체 인구의 40%가 노비였던 신분 구조의 잔재는 '노비 근성'으로 남아, 여차하면 세상을 뒤엎어버리겠다는 파괴적 평등주의로 분출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가 허약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전통적 유교 사상과 공산주의적 심리가 결합하여 사적 소유와 경쟁의 가치를 끊임없이 부정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자료로 보는 국가 채무 전망. 올해 한국은 국가채무가 1,300조 원을 넘어섰고, 매년 100조 원 이상씩 부채가 폭증하고 있어 조만간 부채로 인한 국가 파산이 예고되어 있다.
기획재정부 자료로 보는 국가 채무 전망. 올해 한국은 국가채무가 1,300조 원을 넘어섰고, 매년 100조 원 이상씩 부채가 폭증하고 있어 조만간 부채로 인한 국가 파산이 예고되어 있다.

◆대동강의 비극, 한강의 기적

1946년 3월,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원칙 아래 단 25일 만에 속전속결로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평생 머슴살이와 소작으로 점철된 농민들에게 '내 소유의 땅'이 생긴 것은 일종의 종교적 구원이었다. 농민들은 붉은 기를 들고 "머슴살이 끝났다"며 환호했고, 분배증을 가슴에 품고 김일성과 스탈린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농민들을 단숨에 공산주의 결사보위 세력으로 만든 것은 '토지'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한 고도의 정치적 거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환희'는 거대한 사기극의 결과물이었다. 북한의 토지개혁법 제10조는 분여된 토지의 매매, 소작, 저당을 엄격히 금지했다. 즉, 농민에게 부여된 것은 소유권이 아니라 국가가 허용한 '경작권'에 불과했다. 북한 당국은 땅을 나눠준 대가로 수확량의 25%를 농업 현물세로 징수했는데, 이는 지주에게 내던 소작료와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는 인민군 무기 구입비 등의 명목으로 수확량의 70%까지 빼앗아가는 약탈이 자행되었다.

6·25 전쟁이 끝나자 1954년부터 공산당은 본색을 드러냈다. 1946년 개별 농가에게 나눠준 토지를 다시 빼앗아 '집단농장'으로 편입시켰고, 1958년에는 모든 토지의 100% 집단화가 완성되었다. 농민들은 자기 논밭에서 일하는 주인이 아니라, 국가의 배급에 목숨을 거는 '농업 노예(농노)'로 전락했다. 공짜로 얻은 것은 결코 내 것이 아니라는 준엄한 교훈을 얻었을 때는 이미 모든 자유를 빼앗긴 뒤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과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냉철한 시장경제의 원칙 아래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연간 수확량의 150%를 5년간 분할 상환하는, 농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관련법이 통과되었다. 농민들은 6·25 발발 두 달 전에 자기 소유의 땅을 분배받았다.

이 개혁이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전쟁이 터졌을 때 남한 농민들은 "공짜로 땅을 나눠준다"는 공산당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미 '내 돈을 내고 산 내 땅'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지개혁을 통해 경작지의 95.7%가 자작지로 변했다. 지주-소작 계급의 소멸은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 갈등을 불식시켰고, 누구나 노력하면 당대에 신분 상승이 가능한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 특유의 '캔 두 스피릿(Can do spirit)'이 탄생한 것이다. 북한의 토지개혁이 농민을 노예화하며 '대동강의 비극'으로 끝날 때, 남한의 농지개혁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가장 강력한 하부 구조가 된 것이다.

고유가 피해지원금 홍보물. 코로나19 팬데믹을 시작으로 정부는 기회만 생기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현금을 살포하고 있다. 덕분에 국가 채무는 매년 폭증하고 있다.
고유가 피해지원금 홍보물. 코로나19 팬데믹을 시작으로 정부는 기회만 생기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현금을 살포하고 있다. 덕분에 국가 채무는 매년 폭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찜 쪄 먹을 포퓰리즘 왕국 대한민국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공짜'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명분으로 2020년 5월 헌정사상 최초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한 이후, 한국 정치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돈을 뿌리는 경쟁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최근에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나 뭐라나 하는 명목으로 현금 살포를 시작했다.

국민에게 나눠주는 현금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때마다 국가는 빚을 내서 해결했다. 덕분에 2019년 723조 원이었던 국가 채무는 불과 몇 년 사이 1,300조 원을 돌파하며 GDP 대비 49%라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많은 경제학자가 경고했듯이, 시중에 풀린 막대한 현금은 고물가와 고금리의 직격탄으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지급해야 할 국고채 이자가 연간 30조 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인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 전체보다 큰 규모다.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 과거에 뿌린 공짜 돈의 이자를 갚는 데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민 1인당 짊어진 나랏빚은 약 2,524만 원.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2,500만 원의 빚을 지고 시작하며, 소득의 상당 부분을 부모 세대에게 나눠준 현금 살포의 뒷수습에 쏟아 부어야 할 판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자식들에게 더 좋은 나라 물려주기 위해 졸린 눈 비벼가며 일하고, 허리띠 졸라매고 살았다. 현재 세대는 자식들 죽든 말든 신나게 빚내서 즐기면서, 그 부채를 자식 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 대한 약탈'이다. 과거에는 아르헨티나와 그리스를 손가락질 했는데, 이제는 한국이 두 나라 찜 쪄 먹을 포풀리즘의 마왕으로 등극했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국가 위기 시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고 살포하는 행위는 국가 신뢰도를 파괴하고 경제적 예속을 가져온다고 경고했다. 1946년 북한 농민들은 "땅을 공짜로 준다"는 말에 환호하여 자신들의 자유를 국가에 저당 잡혔고, 그 대가는 대대손손 이어지는 노예의 삶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통장에 꽂히는 공짜 현금에 환호하는 사이, 스스로를 정부 보조금 없이는 살 수 없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다.

1,300조 원의 국가 부채는 현재 세대가 후대의 미래를 가불해서 쓴 탐욕의 결과물이다. 공짜 좋아하다 노예로 전락했던 북한의 비극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2040년대 대한민국이 맞을 수도 있는 예고된 파산이다.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국가가 주는 공짜 선물 뒤에는 반드시 세대와 국가를 파괴하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펜앤드마이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