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주세요" 한마디에 뚝딱! 장난감 병원 13명 의사들

입력 2026-05-08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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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유일 장난감 병원 북새통
기술 문외한 자원봉사자들 모여

권혁환 씨(67·왼쪽)와 정현희 씨(47)가 수리한 장난감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이들은 자원봉사로 장난감을 고치며 아이들의 추억을 이어가고 있다.
권혁환 씨(67·왼쪽)와 정현희 씨(47)가 수리한 장난감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이들은 자원봉사로 장난감을 고치며 아이들의 추억을 이어가고 있다.

5살 남자아이가 쭈뼛쭈뼛 문을 연다. 손에는 낡은 자동차 장난감 하나가 꼭 쥐어져 있다. "고쳐주세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 얼룩지고 닳은 장난감 곳곳에는 아이가 얼마나 오래 이 물건과 함께했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곳은 대구에서 유일한 '장난감 병원'이다. 장난감을 받아 뚝딱 고쳐내는 13명의 의사 선생님이 있다. 아이의 동심의 곁에 선 어른들이 있는 곳. 지난 30일 기자는 달서아이꿈센터에서 운영·지원하는 장난감 병원을 방문했다.

◆ 고장난 장난감의 '응급실'

드라이버, 건전지, 크고 작은 나사들이 어지럽게 놓인 작업대. 고장난 장난감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이곳에서 연신 다급한 목소리가 오간다. "정쌤, 이거 안되겠는데요." "권쌤, 저걸로 한번 뚫어보죠."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기 한 시간여. 장난감에서는 마침내 불빛이 켜지고 소리가 흘러나온다. "딱 고쳤을 때 희열이 정말 크다. 아이가 고쳐진 장난감을 안고 펄쩍펄쩍 뛸 때는 더 그렇다." 장난감 병원 기술 고문 김영석 씨(63)의 말이다. 철로 정비 일을 하던 그는 은퇴 후 이곳에서 '기술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장난감 고장의 대부분은 비교적 단순하다. 끊어진 전선, 녹슨 건전지 단자, 느슨해진 스위치, 먼지가 낀 전기기판 등이 주요 원인다. 다만 전자기판이 복잡한 장난감은 수리가 쉽지 않다. 건반 악기나 학습용 전자 장난감이 대표적이다. 김 씨는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노력하지만 안 될 때도 있다"며 "그럴 때면 아이들이 실망할까봐 더 속상하다"고 말했다.

권혁환(67) 씨가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다.
권혁환(67) 씨가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수리가 어려우면 '상급 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달서아이꿈센터 유창우 관장이 직접 손보는 단계다. 김 씨는 "장난감 병원의 아이디어도 유 관장의 관심에서 시작됐다"며 "쉬는 날에도 나와 수리를 할 만큼 진심이다. 장난감 병원 원장님답다"고 웃었다.

◆ 배워서 고친다… 기술 문외한

이곳이 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장난감을 고치는 13명의 '의사' 대부분이 원래는 공구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고쳐주고싶다' 는 일념 하나로 모인 자원봉사자들이다. 권혁환 씨(67)는 "처음엔 드라이버 이름도 몰랐다"며 "지금은 고장 진단부터 수리, 테스트까지 혼자 해낸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부산의 한 장난감 업체 전문가에게 한 달간 집중 교육을 받으며 기술을 익혔다. 공구 사용법부터 스위치 작동 원리, 기본적인 전기 지식까지 차근차근 배웠다.드라이버와 인두기, 전압·전류 측정기, 전선 피복기, 납땜 도구 등 장난감 수리에 필요한 장비도 생각보다 다양했다. 기본 공구조차 낯설던 이들은 직접 도구를 다뤄보고, 고장난 장난감을 분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수리 기술을 몸으로 익혀갔다.

갈수록 손에 익는 노하우도 쌓이고 있다. 정현희 씨(47)는 "처음에는 하나씩 뜯어보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여러 종류를 다뤄보니까 이제는 어느 부분이 고장났는지 감이 온다"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수리 시간도 많이 줄었다. 예전에 고쳐봤던 장난감은 원인을 금방 파악해서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단순 수리 넘어 '자원순환'까지

장난감 병원의 역할은 단순한 수리에 그치지 않는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지는 장난감은 대부분 플라스틱 폐기물로 남는다. 이곳에서는 고장난 장난감을 고쳐 다시 기부하거나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한다. 수리가 불가능한 장난감은 부품을 분리해 재사용하고, 캐릭터는 키링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버려질 뻔한 장난감이 또 다른 형태로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달서아이꿈센터 관계자는 이를 두고 "아동복지를 넘어 자원순환까지 함께 고민한 결과"라며 "달서구청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한 달간 장난감 수리 교육을 이수한 자원봉사자들이 수료증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후
지난해 8월 한 달간 장난감 수리 교육을 이수한 자원봉사자들이 수료증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후 '장난감 병원'에서 수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 유일의 장난감 병원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경산 등 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고, 출장 수리 요청도 들어온다. 이종윤 씨(73)는 "북구에 고장난 장난감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직접 가서 고친 적도 있다"며 "힘들어도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 무보수로 왜? "추억 잇는 의미있는 일"

이곳의 장난감 의사들은 대부분 자녀를 다 키운 세대다. 그래서인지 장난감을 고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가 떠오른다. "아이들 어릴 때가 많이 생각난다. 동요 나오는 장난감 을 고칠 때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보수도 없이 시간을 쪼개 이어가는 봉사지만, 이들에게 이 일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다. 고장난 장난감을 고치며 아이들과의 추억까지 함께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장난감을 고쳐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우리가 더 하고 싶다."

버려질 뻔한 장난감이 다시 움직이고, 아이의 웃음이 되살아난다. 장난감을 고친다는 것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다. 아이의 기억을 이어주고, 어른의 추억을 다시 꺼내는 일이다. 이 작은 병원에서는 오늘도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정현희 씨(47·왼쪽)와 권혁환 씨(67)가 장난감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들고 작업 중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현희 씨(47·왼쪽)와 권혁환 씨(67)가 장난감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들고 작업 중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