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이란 "우리 석유 시설 공격하면 다 파괴"; 강선우·김경의 '이판사판 폭로전…]처럼 국내외적으로 이판사판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 간이든 국가 간이든 갈 데까지 가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게 된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은, "다스릴 리(이), 판단할 판, 일 사, 판단할 판"으로, 이판과 사판을 붙여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이 끝장내야 할 절박한 지경"을 뜻한다. 다만 이 말을 쓰는 사람의 의도와 문맥에 따라, 첫째 '난장판, 개판, 아수라장', 둘째 '막다른 골목, 끝장을 봐야 할 시점, 운명적 승부 상황', 셋째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의미의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된다. 사람들의 성격이 급하고, 화끈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어느 한쪽에 줄 서고 편 가르기를 선호하는 탓일까.
흥미로운 것은 이판사판에는 대략 네 가지의 설(①∼④)이 있다. 어느 쪽이든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먼저, 불교 유래설이다. 이판(理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과 참선에 전념하는 수행승을, 사판(事判)은 절의 운영(살림살이) 사무를 맡아보는 사무승을 말한다(이것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하편) 「이판사판사찰내정(理判事判寺刹內情)」에 근거한다). 한편 불교 전통에서는 이판승을 더 높이고 사판승을 좀 낮추는 경향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접어들자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홀대받고 승려의 사회적 지위도 추락. 따라서 유교 측에서 보면,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거기서 거기라고 여겼다는 내용(①)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판승과 사판승이 갈등・대립한 시기를 가정하고, 서로가 감정적으로 극단에 치달아 '끝장을 내게'되었다는 내용(②)이다. 덧붙인다면 불교의 화엄 사상에 이(理)를 본체계로 사(事)를 현상계라 보고, '이사(理事)'가 '무애'(無碍: 서로 걸림이 없음)하다는 세계관이 있다. 이 '이사'의 사(事)를 '기(氣)' 자로 대체한 데서 송대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이 생겨난다.
현재 통용되는 이판사판은 '불교유래설'(①, ②)이다. 하지만 한자 표기 등이 다른 다음의 두 가지가 더 있다.
먼저, 일상 언어의 편의적 혼성 유래설(③)이다. 즉 '이판사판'에서 '이, 사'를 '2, 4'로 바꾸어 '2판 4판'으로, 또는 '4'를 '죽을 사(死)' 자로 바꾸어 '2판 死판'으로 이해하는 경우이다. 심지어 '판'을 '한 판, 두 판'의 '판'이라 여겨 '이판 새(新)판'으로, '이것 저것' '이승 저승' 등의 '이, 저'에 맞춰 '이판 저판'으로도 만든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관청 유래설(④)이다. 즉 이판(吏判)은 문관의 인사 담당 수장이던 이조판서를, 사판(司判)은 관리들을 감찰 탄핵하던 사헌부의 수장을 말한다고 가정. 조선시대에 관리들이 죄를 지었을 때 누가 다스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는 뜻이다. 즉 이판 쪽은 관대하고, 사판 쪽은 엄격하여 어느 쪽인가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라는 의미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위의 ①∼④에서 보듯이, 이판사판의 의미 변화 과정을 한마디로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유교・불교의 텍스트에도, 심지어 근대기의 자료에서도 이판사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판'과 '사판'이 어떤 이유에선가 합성돼, 여러 문맥에서 다양하게 사용돼왔다는 사실이다. 극단적 상황에서 이래저래 갈피 못 잡고 흔들렸던 아픈 영혼들이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