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입시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 아까워요."
지난 10일 오후 10시 '대구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수성구 학원가에서 만난 서윤(18) 양이 털어놓은 속내다.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만촌네거리에 이르는 약 1㎞ 구간은 늦은 시각에도 그야말로 불야성(不夜城)이었다. 수많은 학원과 스터디 카페 간판으로 불빛은 꺼질 줄 모르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로 거리는 북적북적했다.
학생,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받는 가장 큰 이유로 "주변에서 다 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신만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뒤처질까 불안하고, 실제로 사교육을 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유의미한 성적 차이도 존재한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당 평균 3~4개는 기본이고, 많으면 10개에 달하는 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대구는 저출생 여파로 전체 학생 수는 줄어들지만 학원 수는 증가하는 '기형적인 양상'이 강화되고 있다. 지역 초·중·고 학생 수는 2021년 24만7천137명에서 지난해 23만3천775명으로 5년 새 1만3천362명이 줄었다. 반면 수능·내신을 대비하는 입시·보습 학원 수는 2021년 2천2천28곳에서 2022년 2천260곳, 2023년 2천447곳, 2024년 2천530곳, 2025년 2천657곳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역대 정부들이 '사교육 경감'을 핵심 교육 정책으로 내놓고 추진해 왔다. 지난 정부는 2023년 학원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힌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제인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교사들과 학원 강사들 사이의 시험 문항 불법 거래인 '사교육 카르텔' 근절 방안도 내놨다. 현 정부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나아가 학원 심야 교습 제한을 강조하며 고강도 단속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수성구 학원가의 풍경은 이러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무색하게 만든다. 학생들은 내신·수능의 변별력 있는 문항을 공략하기 위해 여전히 사교육 업체로 발길이 향하고, 다수의 학원들이 심야 시간에도 단속의 눈길을 피해 암암리에 교습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정책이 '단기적 규제'에 머무르면서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지나친 학벌주의와 입시 경쟁 완화, 공교육의 질적 개선 등 근본적인 교육 개혁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학력은 곧 일자리의 안정성·소득 규모에 비례하는 만큼 학력별 임금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노동 개혁 또한 속도감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게 쉽게 해결될 리는 없겠지만 교육 수요자들의 욕망을 해소시켜 주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사교육 문제도 끊임없이 도돌이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기사에 실명이 나가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성적과 관련된 자칫 예민할 수 있는 문제에 실명을 선뜻 허용하는 행위가 '지금은 우리도 어쩔 수 없지만 작금의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의지로 읽혔다. 반복되는 겉핥기식 개혁이 아닌, 학생들의 행복에 귀 기울이며 진정성 있는 의지를 가지고 교육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 가기를 교육 당국에 진심으로 바라본다. '입시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 아깝다'는 서윤 양이 미래 자신의 자녀에게는 똑같은 아쉬움을 물려주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